생명운동연합과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 등 생명운동 단체들이 17일 식약처 앞에서 낙태약 허가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태여연 제공
정부가 최근 규제 합리화 차원에서 임신중지 약물, 이른바 '낙태 약물' 도입 허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와 의료계, 약학계 전문가들은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낙태 약물이 대체로 안전하다?…"산모 사망에 이를 수도"
전문가들은 약물 낙태가 대체로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 자체가 약물의 오?남용을 초래해 오히려 안전성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약물 낙태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리스톨'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임신 9주 미만의 초기 임신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약물 요법을 말한다. 임신을 유지하는 호르몬을 억제하고 자궁 수축을 유도해 인공 유산 즉 낙태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95 정도의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그러나 나머지 5 정도는 약물의 이상반응에 따라 임산부 건강에 심각하고 사망에 이를 정도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김현아 교수(숙명여대 약학대학)는 "대표적인 중증 부작용으로 꼽히는 과다출혈외에도 극심한 복통과 구토 뿐아니라 감염 및 패혈증 사례도 드물게 보고되고 있다"며 "불완전 유산으로 인해 추가적인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약물 복용 후 발생하는 출혈이 정상적인 약물 반응으로 오인될 경우 자궁외임신 진단이 지연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순철 교수(고려대 산부인과·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는 "낙태 약물은 자궁 파열, 자궁 적출은 물론 산모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한 약물"이라고 덧붙였다.
"편리하고 쉬운 낙태 조장 우려"
홍순철 교수는 "임산부 관련 약물 전문가로서 가장 큰 고민은 약물 낙태를 피임약처럼 받아들이거나 많은 임산부들이 쉽게 낙태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며 "약물 낙태는 안전한 낙태가 아니라 '편리한 낙태', '쉬운 낙태'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현아 교수는 "응급의료 접근성과 사후 추적 평가, 환자 및 보호자의 교육 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낙태 약물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낙태 약물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다. 미국은 심각한 안전성 우려가 있는 의약품에 대해 FDA가 요구할 수 있는 안전성 프로그램(REMS)을 운영하고 있다. 낙태 약물로 쓰이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리스톨'의 경우 안정성 프로그램에 등록된 의료진만 처방이 허용된다. "모든 의사나 약사가 낙태 약물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김현아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미국은 환자 동의서 확보 및 이상반응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와 감시 체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히 '미페프리스톤'에 대해선 사용 설명서에 일종의 '박스 경고'(Boxed Warning)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심각하거나 치명적인 감염 또는 출혈의 발생 가능성을 명시함으로써 의료진과 환자가 잠재적 위험 요소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국가별 허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감염, 과다출혈, 자궁외임신 진단 지연과 같은 '중대한 이상반응'을 중점 감시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는 약물 낙태가 그만큼 임산부의 건강에 위협적이며 제대로 된 사후 관리와 감시 체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약물 낙태로 인한 사망 사례 끊이지 않아
실제로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약물 낙태로 인한 사망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김찬주 교수(의정부성모병원 산부인과)는 미국이 약물 낙태를 승인한 후 "2024년 12월 말까지 미국 식품의약국 FDA에 보고된 사망 사례가 36건"이라며 "누군가는 36명이 뭐 대단하냐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낙태약을 먹지 않았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산모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낙태 약물 허가 후 "자궁외임신 사망 사례라도 나오면 식약처가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 등 생명운동 단체들이 17일 식약처 앞에서 정부의 낙태약 도입 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태여연 제공
앞서 대통령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박용진 부위원장은 지난 15일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식약처의 소극적인 행정을 비판하며 초기 임신중지 약물 도입 허용을 촉구했다. 이에 천주교는 즉각 우려의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총무 겸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 신부는 "생명은 결코 행정적 편의나 경제적 효율을 따지는 '규제 합리화'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엄중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오 신부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고귀한 생명은 어떠한 논리로도 훼손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라며 "정부는 약물 도입을 통한 '낙태 자유화'를 조장하기보다, 태중의 생명을 보호할 실질적인 법적·제도적 울타리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