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4월 26일 요르단 알 후산성당에서 현지 공동체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축복을 전하고 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청 제공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증오와 폭력이 확산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평화 회복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계속된 전쟁에 이어 유다인 병사가 십자가를 파괴하거나 수도자를 이유 없이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성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에서 그리스도인 대상 혐오 범죄까지 잇따르는 가운데 교회가 평화 회복을 위한 ‘주춧돌’을 놓을 것을 주문한 것이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4월 25일 성지 사목 총책임자로 일한 지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사목 서한에서 반복되는 전쟁, 사회적 분열, 강제 이주, 그리고 점령이 초래한 일상 고통을 언급하며 “지금 벌어지는 비극을 일시적 사건으로 치부하며 내버려둘 경우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가운데)이 2025년 12월 19일 가자 지구 성가정본당 사목 방문 중 현지 신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특히 국제질서의 약화 속에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전쟁이 일종의 우상숭배 대상이 됐다”며 “무엇보다 하느님의 이름을 폭력 정당화에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중대한 죄”라고 지적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영적·종교적 차원에 대한 무시’에서 찾으며 위정자들이 새롭게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그는 “예루살렘은 단순한 정치적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가 이뤄진 장소이며 다양한 신앙이 공존해야 하는 곳”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영적 본질을 배제한 채 물리적·세속적으로 ‘공존 시도’가 진행됐기에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2025년 12월 21일 가자 지구 성가정성당에서 현지 공동체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OSV
교회가 지금까지 평화 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 자문하며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전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지금의 혼란 속에 교회가 진실을 말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해왔는지 자문하게 된다”며 “우리는 단순한 조직 유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성지에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구체적 방향으로 △어떤 위기 속에도 자리를 지키는 ‘머무름’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함께하는 ‘현존’ △갈등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 △타자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미는 ‘개방성’ 등을 제시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교회는 단순히 ‘엘리트들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에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의 친교적 만남을 통해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관념적 구호를 넘어 교육과 돌봄의 영역에서 구체적인 사목적 실천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2016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서리로 임명됐고, 2020년 10월 총대주교좌에 착좌해 성지의 교회를 이끌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