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중단 호소하는 레오 14세 교황을 비난하자 속담 소환
“교황을 먹는 자는 죽는다(Qui mange du pape en meurt).”
15세기 무렵부터 유행한 이 섬뜩한 프랑스 속담이 최근 서구권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중단과 평화를 촉구하는 레오 14세 교황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위협하고 나면서다.
‘교황의 권위를 훼손하거나 권리와 영토를 찬탈하려는 세속권력은 반드시 처절한 몰락으로 귀결된다’는 이 경고는 역사 속 반복된 사건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 「마이어스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463년 작성된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프랑스 국왕들과 교황들의 관계에 대한 연대기」에서 처음 확인된다. 해당 문헌은 12세기 교황권에 도전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몰락을 예로 든다.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을 위협하며 이탈리아를 침공했던 황제는 레냐노 전투에서 패배한 후 교황 앞에 무릎을 꿇었고, 14년 뒤 십자군 원정 중 강을 건너다 익사했다.
프랑스 역사학자 에두아르 위송은 최근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며 나폴레옹·비스마르크·히틀러 등 ‘교황을 먹고 죽은’ 권력자들을 소환하기도 했다.
14세기 아비뇽 유수 주도한 필리프 4세의 죽음
14세기 ‘아비뇽 유수(1309~1377)’를 주도하며 교황을 압박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사냥 중 낙마로 사망했고, 사후 14년 만에 잇달아 자손들이 급사하며 후계 없이 왕조가 단절되는 비극을 맞았다. 19세기 나폴레옹 1세 황제 역시 교황령을 침탈하고 두 교황(비오 6세·비오 7세)을 유폐하며 기세를 떨쳤으나, 이후 제국은 몰락했고 포로 신세로 저항하던 비오 7세 교황은 로마로 귀환해 성좌를 되찾았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 황제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가톨릭교회 반대에도 로마의 교황 보호 병력을 철수시킨 직후 보불전쟁에서 대패하며 그의 치세는 종말을 고했다. 당시 황제의 결정을 두고 가톨릭 신자 상원의원 드 부아시 후작이 “교황을 먹는 자는 ‘뒈진다(crève)’”고 거칠게 외친 경고가 현실이 된 셈이다.
보불전쟁 승전과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 또한 가톨릭 억압 정책인 ‘문화투쟁’을 벌였으나 교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를 통해 오히려 지지세를 불린 가톨릭 중앙당 하원의원 오이겐 폰 케셀러는 제국의회에서 “우리 황실을 두고도 ‘교황을 먹어버렸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 말대로 비스마르크가 세운 독일 제국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며 50년을 채우지 못한 채 해체됐다.
프랑스군의 공백을 틈타 로마를 점령하고 교황령을 합병한 이탈리아 왕국의 최후도 비참했다. 인종주의 정책을 내세운 독재자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정권은 이에 반대하는 비오 11세 교황의 ‘교황을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를 무시했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동시에 동맹국 나치 독일과 함께 명운을 다했다.
힘자랑하던 권력자는 모두 역사위 뒤안길로
이처럼 힘자랑을 하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를 깔보던 수많은 제국과 권력자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반면 교황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오늘날 14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이자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라는 사실이 이 속담의 무게를 더한다.
지금으로부터 121년 전, 프랑스 베르사유교구장 샤를 지비에 주교도 저서 「교회와 그 사명」(1905)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저는 앞으로 지구 상에서 어떤 민족들이 패권을 다툴지 모릅니다. 다만 미래에도 늘 교황이 존재할 것임은 확신합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