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념한다.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 성령이 사도들에게 강림한 것을 기념하는 이날은 교회의 생일이기도 하다.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을 거센 바람, 불꽃 같은 혀,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들이 나오는 장면으로 묘사한다.(사도 2,1-11) 이 장면의 핵심은 ‘변화’에 있다. 두려움 속에 문을 걸어 잠갔던 제자들이 밖으로 나와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세상 앞에서 증언할 용기를 줬고, 교회는 숨을 쉬기 시작했다.
따라서 성령 강림 대축일 전례는 교회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교회 헌장」은 “성령을 통해 교회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세상 안에서 사명을 수행한다”(4항)고 설명한다.
이날 복음도 ‘닫힘’과 ‘열림’ 사이를 오간다. 복음에서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그 한가운데로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말씀하신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어 숨을 내쉬며 성령을 주신다.(요한 20,19-23)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던 장면(창세 2,7)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이처럼 성령은 존재 자체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숨결이다.
미사에는 특별한 순서가 하나 더 있다. 제2독서와 알렐루야 사이의 ‘부속가’다. “오소서, 성령이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전례력 전체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 단 두 번만 울린다.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해 성령 강림 대축일 하루 전 성 베드로 광장에서 7만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며 “‘오소서 성령이여’는 예수님 위에 내리신 그 성령, 예수님 사명의 조용한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성령은 요란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성령 없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교황은 이어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전쟁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장벽들을 허물어주시며 미움을 걷어주시고,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한 분이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평화의 성령께 간절히 청하자”고 당부했다.
사도들에게 내려온 성령은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와 함께한다. 세례성사로 신자가 된 사람은 다른 성사들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되고 성령의 은총과 은사를 받아 자신의 생활을 성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자 생활을 성숙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과 아홉 가지 열매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점으로 부활 시기는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제대 곁에 서 있던 부활초도 세례대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부활의 빛이 이제 일상의 자리로 들어오라는 신호다. 미사가 끝날 때 사제는 말한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