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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는 또 다른 바벨탑을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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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종합] 레오 14세 교황이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제로 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5월 25일 발표했다.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 공개된 이 회칙은 총 245항으로 구성됐으며, AI와 디지털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교회 사회교리의 관점에서 성찰한 문헌이다.

 

 

교황은 회칙에서 오늘날 인류가 “새로운 바벨탑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인류가 함께 머무는 도시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을 데이터와 성과, 효율로 환원하려는 흐름을 ‘바벨 증후군’으로 지적하며, 하느님을 배제한 미래 건설의 유혹을 경계했다.

 

 

교황은 레오 13세 교황의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35주년인 지난 5월 15일 새 회칙에 서명했다. 레오 13세 교황이 산업혁명 속 노동과 자본 문제를 다뤘다면, 레오 14세 교황은 디지털 혁명과 AI가 인간 존엄, 노동, 민주주의,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다. 회칙은 사회교리를 “살아 있는 진리의 체계”로 제시하며, 기술 변화의 한복판에서도 인간 존엄과 공동선이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칙 발표 방식도 이례적이었다. 회칙 발표는 통상 교황청의 추기경이나 공보 관계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교황이 직접 바티칸 시노드 홀 발표 자리에 참석했다. 교황청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시노드 홀에서 회칙 발표 행사를 열었고, 교황은 연설과 강복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발표 자리에는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 온전한 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 더럼대 신학자 안나 로우랜즈 교수, 산타클라라대 예수회 신학대학 레오카디 루솜보 교수 등이 함께했다. 특히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창업자인 크리스토퍼 올라가 발표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로이터통신은 교황이 직접 회칙 발표에 참여한 것을 “전통에서 벗어난 방식”이라고 전했다.

 

 

올라는 발표 자리에서 AI 개발을 기술 기업들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대규모로 인간 노동을 대체할 “실질적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될 경우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지원하는 일은 “역사적 규모의 도덕적 의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첨단 AI 연구소들이 상업적·지정학적 압력 속에서 움직이는 만큼, 종교 지도자와 정부, 시민사회 등 외부의 감시와 식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회칙에서 AI를 무조건 거부하지 않았다. 기술은 치유하고 연결하며 교육하고 공동의 집을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AI를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윤리적 식별은 기술을 선한 목적에 쓰느냐의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AI 시스템이 어떻게 설계됐는지, 그 안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어떤 관점이 담겨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문제도 회칙의 핵심 주제다. 교황은 자동화와 로봇, AI가 노동 구조 자체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실업을 “중대한 악”으로 보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대규모 실업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국가가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할 사회적 재앙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더 큰 이윤을 위해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희생시키는 선택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경제 질서는 인간 존엄과 공동선에 종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환경 속 진리의 문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교황은 허위정보와 조작된 이미지, 알고리즘이 여론과 판단을 왜곡할 수 있는 시대에 “진리는 공동선이지 권력이나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진지한 언론, 토론의 장, 학교와 가정의 디지털 교육, 대학의 지식 통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메시지는 더욱 강했다. 교황은 살상 무력 사용 결정을 AI나 불투명한 자동화 절차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엄격한 의미의 정당방위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온갖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돼 온 ‘정당한 전쟁’ 이론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대화와 외교, 용서가 인간 생명을 증진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더 효과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교회가 노예제를 단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는 이를 “그리스도교 기억 안의 상처”라고 표현하며 “교회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용서를 청한다”고 밝혔다. 오늘날의 인신매매 역시 현대적 형태의 노예제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했다.

 

 

회칙의 마지막 장은 ‘권력의 문화’와 ‘사랑의 문명’을 대비시킨다. 교황은 전쟁과 군비 경쟁, 공포와 양극화를 정상화하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디지털 시대에도 그리스도인은 “수동적 구경꾼”이나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해 논평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대신 말을 무장 해제하고, 정의를 통해 평화를 건설하며, 희생자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대화와 다자주의를 되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아무리 정교한 계산 시스템이라도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마음이나 선과 악을 식별하는 양심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기계가 효율성에서 뛰어날 때조차, 바라봄을 요청하는 인간의 얼굴은 우리 역사의 중심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AI 시대가 하느님을 배제한 또 하나의 바벨탑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 존엄과 공동선, 진리와 평화를 기준으로 기술을 식별한다면 ‘사랑의 문명’을 세우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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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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