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 봉헌
이재명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집전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강론에서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결코 평화를 포기할 수 없으며,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두, 함께,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유 추기경은 또 "대통령 직무수행에서 평화가 얼만큼 중요하고 남북이 정말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자고 호소하심에 대해서 깊게 동할 뿐만 아니라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 유흥식 추기경 강론 전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재명 대통령님과 김혜경 여사님, 정부 부처 관계자 여러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신 외교관 여러분, 함께하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이 뜻깊은 시간을 마련해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해의 중간을 지나가는 이때, 오늘의 미사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금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새해에 다짐했던 일들도 있을 것이고, 목표로 삼았던 과업도 있을 것입니다. 계획한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립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청합시다.
오늘 우리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이 성 밖 바오로 대성전은 영원한 도시 로마를 순례하는 7대 대성당 중 하나입니다. 이방인들의 사도이신 바오로의 무덤이 있는 매우 중요한 대성전입니다. 여러분 뒤에 위치한 교황 제대 계단 아래에 바오로 사도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라는 호칭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바오로 사도께서는 당시 예루살렘 밖에 있는 수많은 공동체를 활발히 왕래하시며, 그 누구보다도 주님의 복음을 열정적으로, 활발히, 땅끝까지 선포하셨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열악한 선교 여행 가운데 만났던 추위와 매질, 파선과 강도의 위험, 광야의 궁핍과 강물의 위험도 그분의 열정을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사도께서는 탁월한 언변과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면서도, 인간적으로 누구보다 뜨겁게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교회를 사랑할 줄도 아셨습니다.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던 순교자들의 증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이방인들을 향한 열정과 사랑에서부터 이미 그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백성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라는 핵심 덕목은 신비롭게도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방금 전에 들은 제1독서의 탈출기 19장은 오경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탈출기 1장부터 18장까지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의 고통을 겪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의 인도로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느님의 사명을 받고,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비롯한 여러 시련과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백성을 시나이산까지 이끌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나이산에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시나이산에서 머무르는 이야기는 오늘 봉독한 탈출기 19장에서 시작되어 탈출기의 나머지 부분과 레위기 전체, 그리고 민수기 10장에 이르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이후에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을 이어 나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계약을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소유하시는 백성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지켜야 하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민수기 10장까지 수많은 율법이 나열될 것이지만, 이 모든 계명은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여러 놀라운 일을 통해 이집트를 탈출했기 때문에 그분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분 뜻에 따라 살아가야만 그분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제2독서에서 이렇게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하느님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그분으로부터 한량없는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죄인인 우리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그분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당신 전부를 내어주시며 드러내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로마 5,10)
이처럼 우리도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고 때로는 원수처럼 살아가던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죄인인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 역시 이웃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별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시작 부분이 아니라, 시간이 꽤 지난 10장에 이르러서야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도를 부르셨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열두 사도들은 서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도저히 함께하지 못할 것만 같은 다양함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선별하신 열두 사도의 다양함은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모든 이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을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이 지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한국어 성경으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성경 원문에서 splanchnizomai(스플랑크니조마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리스어 원문의 동사는 본래 '내장이 뒤틀리는'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단순히 어떤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 지나가는 형식적인 동정이 아니라, 그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내 속의 기관이 뒤틀릴 정도로 아픔을 공감하는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슬픈 처지에 이 정도로 큰 연민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목자가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군중들이 너무나 안쓰러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도들을 선별하시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로,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형제들에 대한 연민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연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가득하고, 더 나아가 폭력과 무력이 그 자리를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주님께서는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 삶의 터전을 잃고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기가 꺾여 있는 이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지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생명이 가장 소중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연민에 대해 묵상을 하니 문득 대한민국을 각별히 사랑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떠오릅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하신 교황님께서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셨습니다. 깊은 침묵과 기도, 그리고 사랑의 눈으로 그들의 아픔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 앞에서, 한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상처 앞에서, 교회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이어야 함을 실제로 보여 주셨습니다.
한국 방문을 마치시고 로마로 돌아가시는 비행기 안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한 일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는 한국 사회에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편 가르기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 곁에 함께 있는 것이 복음의 방식이고 교회가 지녀야 할 연민의 방식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2025년 5월 8일,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신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라는 말씀으로 세상에 첫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이는 평화와 형제애를 사랑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으셨다는 표징이었습니다. 또한, 이 인사는 단순한 축복의 말이 아니라, 갈라진 세계를 향해 교회가 행해야 하는 사명의 선포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시며,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셨고,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온 인류가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사랑하는 이재명 대통령님과 대한민국의 공직자님들께도 이 평화의 부르심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한반도는 아직 분단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고 있습니다. 형제자매가 갈라져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결코 평화를 포기할 수 없으며,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두, 함께,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늘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자세로, 대결보다 대화가, 증오보다 화해가, 두려움보다 신뢰가 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우리 대한민국이 대통령님과 함께 온 세상에 증언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면에서는 1년동안 대통령님의 대통령 직무수행에서 평화가 얼만큼 중요하고 남북이 정말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자고 호소하심에 대해서 깊게 동할 뿐만 아니라 매일 기도하고 있음을 말씀을 드립니다.
참된 평화는 단지 갈등을 멈추고 싸우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평화는 마음을 활짝 연 대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구체적인 노력과 함께 시작됩니다. 정치와 외교의 언어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생명을 지키고 사람을 살리며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결국 복음의 정신 안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레오 14세 교황님과 함께 가톨릭 교회는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레오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형제들과 화합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이로 구성된다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토대로, 가톨릭 교회가 화합된 세상, 화해를 지향하는 세상의 표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며 당신의 직무를 시작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교황직 취임 미사 강론에서 교회는 사랑이고 친교이며 가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형제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은 평화와 떼어 낼 수 없는 덕목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곳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메마른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한 송이 꽃은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폭력의 자리에 연민이 들어서고, 무관심의 자리에 소통이 들어서야 합니다.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로 보일지라도 경청의 마음을 지니고 만남을 추구해야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
지금 전 세계에는 혼란과 갈등이 만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연민과 화합의 정신으로 형제들을 대하며 대화와 사랑의 길로 나아갑시다. 오늘 하루도 평화와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