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 폴란드 OSV] 레오 14세 교황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순교한 폴란드 출신 살레시오회 사제 9명을 신앙의 모범으로 추모했다.
교황은 6월 14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과 주일 삼종기도를 바친 뒤 “순교한 살레시오회 사제들은 모두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 때문에 전체주의 정권의 박해를 받은 희생자”라고 말했다. 살레시오회 사제 9명은 6일 폴란드 크라쿠프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지에서 거행된 미사 중 시복됐다. 이날 미사에서는 이들의 순교뿐 아니라 교육자, 사목자, 젊은이들의 동반자로 살아간 삶도 함께 조명됐다. 시복 미사에는 폴란드와 해외에서 온 주교, 사제, 수도회 장상들과 함께 수천 명의 신자가 참여했다.
복자품에 오른 사제들은 얀 시비에르츠 신부, 이그나치 안토노비치 신부, 카롤 골다 신부, 브워지미에시 솀베크 신부, 프란치셰크 하라짐 신부, 루트비히 므로체크 신부, 이그나치 도비아시 신부, 카지미에시 보이치에호프스키 신부, 프란치셰크 미시카 신부다. 이들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던 기간에 체포된 뒤, 1941~1942년 악명 높은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와 다하우에서 선종했다.
아우슈비츠가 최대 규모 수용소였던 반면, 다하우는 주로 가톨릭 성직자들이 수감되는 강제수용소였다. 폴란드 국가기억연구소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다하우에는 성직자 약 2800명이 수감됐으며, 이 가운데 약 1780명이 폴란드인이었다. 폴란드 사제들의 나이는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일부는 본당 사제였고, 다른 이들은 교사, 신학교 교수, 학교 행정가, 청소년 사목자였다.
교황은 2025년 10월 이들이 ‘신앙에 대한 증오로’ 살해됐음을 인정하는 교령을 승인해 시복의 길을 열었다.
살레시오회 크라쿠프 관구장 다리우시 바르토하 신부는 시복된 사제들에 대해 “그들은 젊은이들을 교육했기 때문에 점령자에게 위험한 존재로 여겨져 목숨을 잃었다”며 “나치 점령 당국은 폴란드의 민족 정체성을 파괴하고 저항을 억누르려는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성직자와 교사, 지식인들을 제거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시복 미사가 거행된 크라쿠프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지는 특히 의미가 깊은 장소다. 새 복자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이 되는 젊은 카롤 보이티와가 기도하고 자신의 성소를 식별하던 살레시오회 본당에서 사목했다. 카롤 보이티와는 살레시오회 회원들이 체포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교황이 된 뒤 살레시오회가 자신의 성소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