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관리 부실 사태가 대한민국 사회를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를 비롯해 전국 67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고, 개표방송이 한창인 밤늦은 시간까지 투표가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근간인 국민의 참정권이 국가 기관의 안일함과 무능으로 인해 심각하게 침해당한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분노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분노는 지극히 정당합니다. 전국 주요 대학 총학생회의 시국 성명에도 동의합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헌법기관이라는 독립성의 그늘 아래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기피해 온 선관위의 고질적인 타성과 오만이 불러온 참사입니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와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철저한 수사는 물론, 특검까지 포함한 조사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아가 투·개표 관리 프로세스 전반을 혁신하고 책임 소지를 명확히 하는 근본적인 선관위 개혁이 반드시 단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관위의 무능을 규탄하고 뼈를 깎는 개혁을 요구하는 것과,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일각에서 구체적인 법리적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전면 재선거'와 '부정선거' 프레임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 무효와 재선거는 행정적 위반이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히 입증될 때에만 제한적으로 인정됩니다.
더욱이 특정 정당이 자신들이 승리한 지역은 제외하고 참패한 지역만 골라 '표적 소청'을 제기하거나 전국적인 재선거 선동을 이어가는 것은, 선거 참패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정략적 선동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음모론적 기치 아래 자행되는 극단적인 행동은 이민 도를 넘어섰습니다. 개표소가 있는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를 불법 점거한 봉쇄 시위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선거와 무관한 애꿎은 시민들 불편이 커지고 있습니다.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시위대의 봉쇄로 인해 개인 장비조차 반출하지 못하고 대여 장비를 들고 출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핸드볼경기장에 입주한 9개 종목 체육단체들은 업무가 마비되었습니다. 더욱이 시위대가 어린 선수들의 소지품을 무단 검문하며 시위현장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분노가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의 정당한 권리와 일상을 파괴하는 불법행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무법천지 상황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끝없는 갈등의 늪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주권자의 분노는 선관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고치는 건설적인 에너지로 승화되어야지, 사회를 파괴하는 불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혼란을 조속히 종식하고 하루속히 일상과 민생의 안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과 강력한 선관위 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잠실 참정권 시위 >입니다. 훼손된 참정권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고 시위대의 불법행위에는 단호하게 대응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