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배론성지(충북 제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 1861년 6월 15일 최 신부 선종 이후,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는 장례 미사를 봉헌한 뒤 그의 시신을 배론 성 요셉 신학교 뒷산에 안장했다. 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준 푸르티에 신부가 당시 교장으로 있던 한국 교회 첫 신학교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르메르 신부 1890년대 초 회고록 프랑스 아카이브서 확인
박해 이후 사라진 신학교 흔적과 최양업 신부 무덤 증언
가장 오래된 참배 문헌, 묘 돌본 ‘무명 여교우’ 사연 전해
지난 15일은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1821~1861) 신부의 선종일이었다. 최 신부 선종 165주기를 기리며 병인박해(1866) 이후 조선 선교를 재개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최 신부 묘소를 참배해 남긴 기록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현존하는 문헌 가운데 최 신부 묘를 가장 먼저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는 인물은 르메르(Le Merre, 한국명 이유사, 1858~1928) 신부다. 그는 강원 횡성 풍수원본당(현 원주교구 소속) 초대 주임을 지내던 1890년대 초중반경, 신자들과 충북 제천 배론 성 요셉 신학교 뒷산에 있는 최 신부 묘를 찾았다. 본지는 파리외방전교회 산하 프랑스-아시아연구소(IRFA) 온라인 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회보」 제163호(1925년, 프랑스어판)를 발견, 르메르 신부가 이후 당시를 회고하며 구체적으로 작성한 글 내용을 확인했다.
르메르 신부
이 글은 1896년께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르메르 신부가 “내 거처에 현지인(한국인) 사제 한 명이 막 도착했다”고 적었는데, 이는 그해 최 신부 다음으로 사제품을 받은 한국인 사제 중 한 명인 풍수원본당 제2대 주임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63~1943) 신부를 지칭한다. 르메르 신부는 “이 젊은이를 한국 선교지의 보물로 여긴다”며 “그를 보니 1866년 박해 이전에 선종한 한 현지인 사제(최양업 신부)의 묘를 찾기 위해 몇 해 전 나섰던 여정이 떠오른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전날 내린 눈이 돌풍에 휘날리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날씨에도 나와 동행한 복사와 교우들은 씩씩했고, 우리는 길을 나섰다. 몇 시간을 걸어 좁고 험한 협곡을 지나자, 마흔 채 남짓한 집들이 흩어진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구학산이 그곳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배론이다! 배론! 배론! 얼마나 많은 기억을 일깨우는 이름인가. 이곳은 옛 신학교이자 오랜 세월 순교한 선교사들을 품어주었던 소박한 초가집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길가의 나무 팻말에는 마을 사람들이 제천 사또에게 보고해 배론이라는 이름을 구학동(현 구학리)으로 바꾸었으니 더 이상 배론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을 쓰는 이는 약 30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사교(천주교) 무리의 일당으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도 붙어있었다.
우리는 옛 신학교 터에 도착했다. 외교인(비신자) 새 주인은 예상치 못한 손님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맞았다.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신학교 교장과 교사)가 거처했던 안쪽 방들을 둘러보았으나, 모든 것이 변해 신학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주인이 내준 소박한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무덤을 찾아 나섰다.
30년도 더 전에 최 신부의 장례에 참석했던 한 교우가 앞장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언덕을 올라, 거대한 봉분 앞에 무릎을 꿇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보십시오! 바로 최 신부님의 무덤입니다!’ 나도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나는 교우들과 함께 위령 기도로 시편 130(129)편을 바쳤다. 그런 뒤 계곡 쪽을 내려다보니, 꽤 많은 외교인들이 이 광경을 다소 겁먹고 당황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최 신부의 무덤이 보살핌 없이 방치된 것은 불과 몇 해 전부터의 일이었다. 외교인들의 이야기로는 오랫동안 이름 모를 여인이 해마다 한 번씩 어김없이 찾아와 봉분을 벌초했다고 한다. 그 여인은 누구였을까? 분명,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교회가 이 사랑하는 한국 땅에서 길러낸 강인하고 용감한 영혼의 여교우였을 것이다! 영혼의 아버지를 향한 그 여인의 깊은 효심을 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천국에서 상을 내려주시기를!”
르메르 신부가 말한 최 신부 묘를 돌본 여인은 누구일까. 최 신부의 가족이나 가까운 교우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을까. 앞으로의 연구가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