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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가련한 머스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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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언젠가 ‘머니타리안회’(Moneytarians)라는 수도회를 만들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그 수도회의 사도직은 작은 낙타를 기르는 일이고, 수도복은 맞춤 재킷이다. 재킷 주머니에는 수도회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데, 웃고 있는 낙타가 바늘귀를 뛰어넘는 그림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예수님의 말씀, 곧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 참조)는 말씀을 가리킨다.

일론 머스크가 최근 세계 최초로 ‘조만장자’가 되었지만, 그가 머니타리안회 설립에 자금을 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못 들었다.

돈의 역사는 오래됐다. 물물교환을 대체한 최초의 주화들은 기원전 7세기, 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에 있던 리디아 왕국에서 등장했다. 돈이 그토록 오랜 세월 사용되어 온 것은 그것이 유용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돈은 편리하다. 그러나 돈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돈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나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이상한 일을 시킬 수 있다.

돈 때문에 우정과 약속을 배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이들도 있다. 돈 때문에 무기나 마약을 파는 이들도 있다. 돈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를 희생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들도 결국 죽을 것이다. 그리고 돈은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안경사였던 ‘닥’ 아렌스 씨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지혜 하나를 내게 전해 주었다. “사람은 한 번에 옷 한 벌밖에 입지 못하고, 한 번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며, 한 번에 침대 하나에서밖에 잘 수 없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조만장자가 되기 전에도 일론 머스크는 평생 다 써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돈, 수천억 달러를 가지고 있었다. 폭발하는 로켓에 계속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도 수천억 달러와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그가 지닌 어떤 필요나 갈망을 채워 주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1조 달러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일까. 수천억 달러가 주지 못한 것을 1조 달러가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일까.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돈은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의 본성 안에는 행복을 만들어 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돈이 많을수록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원한다.”

슬프게도 머스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조만장자가 되는 일이 억만장자였을 때보다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에 더 나은 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은 돈을 향한 것도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장난감과 허상의 권력을 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약 1600년 전, 하느님께 드리는 성찰 안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저희 비천한 피조물은 당신을 찬미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당신 창조의 일부이며, 저희 안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저희 죄의 증거이며, 당신께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신다는 표지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여전히 당신을 찬미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당신 창조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당신께서 저희 안에 당신을 찬미하려는 갈망을 불러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저희를 당신을 향하도록 지으셨고,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찬미를 드리고자 갈망한다.

엄청난 부자들도 하느님 창조의 일부다. 그리고 그들 각자에게도 언젠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만큼 가난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들도 그분처럼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우리의 존재가 하느님을 향해 있다는 깨달음이 부족해 보인다.

문제는 그들의 부유함 자체가 아니다. 비극은 그들이 하느님을 위해 창조되었음에도, 자기 마음 안의 하느님 모양의 갈망이 더 많은 부로 채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여러 방식으로 전해져 온 말처럼, 부는 거름과 같다. 한곳에 쌓아 두면 악취를 풍긴다. 널리 흩뿌려질 때에만 좋은 것들이 자라도록 도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부자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측은히 여겨지고 기도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갈망을 채우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애쓰고 있으며, 그 갈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며 완성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청난 부자들이 그 교훈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는 점에 감사할 수 있다. 동시에 그들 자신도 언젠가 그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한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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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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