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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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스물 여섯으로 향하는 열차

조재선(베드로, 서울 노곡중학교 교사)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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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까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성심수녀회 김 수녀님이 번역을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용돈도 벌 겸 일을 맡았다. 일감을 받기로 한 그날, 수녀님과 서강대학교 교정을 걸었다. 새 학년을 맞은 신입생들이 앳된 모습으로 스쳐 지나갔다. 수녀님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십 대 때 형성된 가치와 정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아”라고 했다. 살아보니 그 말이 맞았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왜 옛날 노래만 좋아하는지 의아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즐겨듣는 노래 중 하나는 2NE1의 ‘I Don’t Care’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신감 없던 청년 시절의 나를 응원해주는 느낌이 든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음악이 가진 기이한 특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사람들이 다 흐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초임 시절 학생들에게 영어 일기를 숙제로 내주었다. 매주 영어로 한 편 일기를 써오면 그 아래 내가 영어로 소감을 써주는 식이었다. 문법이나 철자를 신경 쓰지 말고 마음대로 써오라고 했다. 나도 아무것도 고쳐주지 않고 나름대로 응답의 글을 덧붙여줬다. 어떤 남학생이 한 번은 주말에 텔레비전에 2NE1이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면서 노래도 좋지만 춤을 너무 잘 춘다고 적었다. 집도 넉넉해 보이고 공부도 잘했던 아이였다. 궁핍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그 아이가 그저 부러웠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옛 제자 하나가 결혼한다고 해 갔다가 그 일기를 쓴 아이를 만났다. 신문 기자를 역임했다가 정치권에도 계셨던 아버지 안부를 물으니 그 사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 걱정 없어 보였던 그 아이의 처지를 내심 부러워했던 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사실 ‘저 사람은 걱정이 없어 보이는데 참 좋겠다’하고 여길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쌍한 처지일 뿐이다.

그해 여름, 새로 생긴 7차 교육과정에 따라 기초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은 보충수업을 들어야 했다. 공부 못하는 죄 아닌 죄로 학교에 끌려 나온 아이들이 수업을 잘 들을 리 만무했다. 쉬는 시간을 주면 아이들은 휴대전화나 음악을 켜고 2NE1의 ‘I Don’t Care’를 따라 불렀다. 나머지 공부 같은 건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아이들은 ‘그만할래, 상관 안 해, I Don’t Care’를 힘줘 불렀다.

하루는 수업 마치고 어떤 아이가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밥을 사느냐 했더니, 꿈나무 카드(결식아동 지원 카드)에 적립액이 남았으니 사주겠다는 것이다. 대학로 아이스크림 가게 건너편 편의점에 함께 갔다. 아이는 구석에 있는 도시락을 쭉 구경시켜 주면서 이건 이래서 맛있고 이건 저래서 맛있고, 이건 추천할 만하고 이건 맛없으니 고르지 말라고 했다. 도시락을 고르니 아이가 능숙한 솜씨로 전자레인지에 데워줬다. 편의점 도시락은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그 아이에게서 깊은 위로를 받았다.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랑은 늘 간절히 기다리며 바라보던 편에서 오지 않고 다른 편에서 왔다. 특별히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이에게서 올 때가 많았다.

이번 학교 임기가 끝나고 다음 학교에서 정년퇴직이다. 아이들과 후배 교사들이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점점 알아듣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어폰으로 2NE1을 듣는 내 마음은 여전히 어머니가 사주신 감색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혜화역을 향해 달려간다.



조재선(베드로, 서울 노곡중학교 교사)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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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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