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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누가 내 말을 들어 주었으면!(욥 31,35)

[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구약 성경 – 듣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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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안은 시메온, 1669년, 캔버스에 유채, 98x79cm, 국립미술관, 스톡홀름, 스웨덴

우리 시대에는 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새벽 시간만큼은 티브이도 말을 멈추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밤낮 없이 말과 말 사이의 틈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말이 넘쳐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대부분은 티브이, 라디오, 공공장소의 확성기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일방적인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도, 응답하지도 않습니다. 소통을 위한 말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가 고독, 불행, 정신적 충격 등에서 벗어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이처럼 들음이 없어 대화로 나아갈 수 없는 말은 단순한 정보전달 이상을 넘어서기 어려운 한계를 지닙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들으라고 말씀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생명을 낳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말씀은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루카 7,15)

또한, 말씀은 우리보다 먼저 있으며, 우리가 자신의 기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요한 복음서는 하느님을 말씀과 동일시하며,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가 그러하듯이, 인간은 말씀을 듣고 응답함으로써 인간답게 되어갑니다. 그러니 말씀은 인간의 표지인 동시에 신의 표지인 것입니다.

나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값진 선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선물을 받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지 않은 지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런 욥을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찾아오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는 욥의 말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욥은 흠 없고 올곧은 인물입니다.(욥 1,1)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의로움에 합당하지 않은 지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런 욥을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찾아오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는 욥의 말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게나, 죄 없는 이 누가 멸망하였는가?”(욥 4,7)
고통 중에 있는 이와 하느님의 의로우심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갇힌 이들이 만나면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통받는 이가 하는 말과 무관하게 그들의 입술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을 정당화하려는 목적만을 가진 그들에겐 말이 너무 많아서 들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대화보다는 자백을 강요하는 심문에 가깝게 됩니다.
이것은 고통받는 이에게는 쓸모없는 말일 뿐입니다. 욥은 제발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내 말을 귀담아듣게나. 그것이 바로 자네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네. 참아 주게나, 내가 말을 하게. 내 말이 끝난 뒤에 비웃어도 좋네.(욥 21,2-3)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편한 말 앞에서 귀를 닫곤 하죠. 자신을 보호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욥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자네들은 거짓을 꾸며 내는 자들, 모두 돌팔이 의사들일세. 아, 자네들이 제발 입을 다문다면! 그것이 자네들에게 지혜로운 처사가 되련마는.(욥 13,4-5)
마치 손을 댈수록 환자를 더욱 고통스럽게만 하는 돌팔이 의사처럼 친구들이 말을 하면 할수록 위로가 아니라 괴로움만 더해집니다. 이제 욥의 말을 들어줄 분은 하느님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분께 여쭙고 하느님께 항변하고 싶을 따름이네.(욥 13,3)
과연 하느님께서는 욥에게 귀를 기울여주실까요? 네! 하느님께서는 욥의 말을 다 들어주십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가운데 하나인 하느님께서 욥에게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응답하셨다.(우리말 성경에는 ‘말씀하셨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욥 38,1)
응답은 들음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욥은 깨닫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한 그에게까지 몸을 낮춰 말씀을 다 들어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욥은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욥의 말을 들어주시고, 욥이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느님만은 우리 말을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아마추어미술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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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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