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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첫 본토인 성인 성해 한국 안치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첫 성인 성 피터 토 롯 유해 안치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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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전교수도회 첫 성인이자 파푸아뉴기니 최초의 본토인 성인인 피터 토 롯의 유해를 한국관구에 안치하는 예식 미사가 7일 수도회 본원에서 봉헌되고 있다.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첫 성인이자 파푸아뉴기니 최초의 본토인 성인인 피터 토 롯(Peter To Rot)의 성해가 한국에 안치됐다.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한국관구는 성인의 기념일인 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본원에서 관구장 신현철 신부 주례로 성 피터 토 롯 유해 안치 미사를 봉헌했다.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첫 성인이자 파푸아뉴기니 최초의 본토인 성인인 성 피터 토 롯.


성 피터 토 롯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파푸아뉴기니에서 모든 종교 활동을 금지한 상황에서도 평신도 교리교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돌보다 1945년 순교했다. 특히 그리스도교 혼인과 가정의 존엄을 지킨 평신도 사도로 기억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뉴브리튼섬 라쿠나이의 신앙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은 18세 무렵 교리교사 양성 교육을 받은 뒤 고향에서 교사이자 교리교사로 활동했다. 어린이 교리교육과 성경 공부, 기도 모임을 이끌었으며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공동체 갈등을 중재했다. 혼인 후 세 자녀를 두었고,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생활의 모범이 됐다.

1942년 일본군이 뉴브리튼을 점령하고 선교사들을 감금하자 성인은 지역 가톨릭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 나섰다. 위험을 무릅쓰고 기도 모임과 교리교육, 성사 준비와 신자 돌봄을 이어갔다. 특히 전쟁 말기 일부다처제가 다시 허용되자 그리스도교 혼인의 존엄과 일부일처제의 가치를 공개 증언했다.

성인은 종교 활동을 이어가며 일본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수감돼 1945년 독극물 주사로 순교했다. 성인은 죽음을 앞두고도 “내가 죽는다면, 나는 내 신앙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해 10월 19일 그를 파푸아뉴기니의 첫 성인으로 시성했다.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첫 성인이자 파푸아뉴기니 최초의 원주민 성인인 성 피터 토 롯의 유해를 7일 한국관구 본원에 안치하고 있다.


유수영(예수성심전교수도회 신학원장) 신부는 이날 미사 강론에서 성인을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실이자 창립자 쥴 슈발리에 신부가 추구한 선교 영성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예수 성심이 사랑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제와 수도자뿐 아니라 평신도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창립자의 정신이 결실을 본 것이다. 수도회 첫 성인이 창립자도, 사제·수도자도 아닌 평신도라는 사실 자체가 수도회 고유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날 유해 안치 미사에도 사제·수도자를 비롯해 예수성심 평신도회인 예수성심 친교회원 70여 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성인이 보여준 순교 신앙과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를 되새기고, ‘슈발리에 가족’으로 함께 복음화 사명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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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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