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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교황의 휴가와 잃어버린 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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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주일, 람페두사에서 돌아온 지 불과 몇 시간 뒤 교황 레오 14세는 카스텔 간돌포 교황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황은 자유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앞으로 몇 주 동안 “조금 쉬고, 조금 기도하고, 조금 독서하고, 바라건대 운동도 조금 하며” 지내겠다고 말했다.

네 번 반복된 이 ‘조금’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영웅적인 은둔이나 휴식으로 위장한 또 다른 생산성을 말하지 않는다. 쉼이란 육체와 정신, 영혼의 조화이며,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누렸다. 음악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었다. 교황의 삶의 리듬에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바로 그러한 쉼 안에서 교황의 직무를 이끌어 간 생각과 통찰, 영감이 무르익었다.

이 모든 것을 밝혀 주는 라틴어가 있다. 영어 ‘vacation’의 어원이 된 ‘vacare’다. ‘Vacare’는 비어 있다, 자유롭다, 무엇인가를 위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수도자들은 ‘vacare Deo’, 곧 ‘하느님을 위하여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해 왔다.

그렇다면 참된 휴가는 갖가지 오락과 자극으로 가득 채우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인가가, 더 정확히 말해 ‘어떤 분’께서 그 안에 머무르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다.

창세기의 일곱째 날은 창조에 덧붙여진 부록이 아니다. 창조의 완성이다. 하느님께서는 쉬셨고, 그 쉼 안에서 세상을 완성하셨다. 안식일은 피로함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관상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도 선교 활동을 마치고 온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도 ‘좀’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도 쉼은 도피가 아니다. 근원으로 돌아가고, 그분과 함께 머물며, 활동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쉼은 결코 자신을 가두는 요새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쉼은 여전히 하나의 요청이며, 거의 계명과도 같다. 멈출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세상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쉼은 신학적 겸손의 행위다.

경험은 일종의 호흡이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들이마시고, 그것을 바라본 시선으로 이해하며 다시 세상에 내쉰다. 시인 파울 첼란이 「숨전환(Atemwende)」에서 제시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첼란에게 ‘숨전환’은 시가 탄생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휴가도 이와 같다. 여러 달 동안 끊임없이 들이마시기만 했던 삶이 마침내 숨을 내쉬는 시간이다.

숨을 내쉬지 않는 사람은 질식한다. 영성은 일상생활과 분리된 특별한 시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성은 리듬과 교대, 그리고 음악에서 쉼표가 소리에 형태를 부여하듯 삶에 형상을 부여하는 멈춤 안에 머문다. 그러므로 쉼은 영적 생활의 반대가 아니다. 쉼은 영적 생활을 이루는 본질적인 음절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쉼과 관련해 특별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 도구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생태계 안에 거주한다. 접속을 끊는 것은 세상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다. 세상이 우리를 하나의 기능으로 축소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거부다. 어떤 형태로든 단절이 없는 휴가는 자칫 강도만 낮아진 노동이 되고 만다.

그리고 육체가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운동을 언급했고, 우리는 교황이 수영과 테니스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강생에 대한 믿음이다.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영이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다. 수영하고, 걷고, 놀이를 즐기는 것은 순수한 무상성의 행위다. 아무런 대가나 목적 없이 행하기에,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관한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하느님 나라는 품삯이 아니라 선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황의 휴가 계획을 이루는 세 번째 요소인 독서가 있다. 휴가 중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넓히는 일이다.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시는 일정표가 굳게 닫아 두었던 우리 내면의 방들을 열어 준다.

화산호와 정원을 품은 카스텔 간돌포는 앞으로 3주 동안 이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가시적인 표지가 될 것이다.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기도하는 교황의 모습은 인간이 자신이 생산한 것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말해 준다.

전쟁이 횡행하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이 ‘조금의 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언이다. 시간을 조금 비움으로써, 생명이 다시 그 안에 깃들게 하는 예언이다.

글 _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예수회 사제로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SNS 시대의 신학」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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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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