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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두 개의 이교와 교황청의 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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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스코틀랜드 오크니제도의 바람 거센 섬 파파 스트론세이에서 한 수도자가 교황의 승인 없이 주교로 서품됐다.

주교 서품을 집전한 이는 캐나다 출신의 교황좌 공석주의자 피에르 루아다. 그는 성 바오로 6세 교황 이후 합법적인 교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교품을 받은 이는 트란살피나 구속주회 소속으로, 이 단체는 1988년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가 스위스 에콘에서 불법으로 주교들을 서품한 사건의 여파 속에서 탄생했다.

이 단체는 2008년 교황청과 화해했고, 2012년 교회법상 공식 설립됐다. 하지만 이제는 교황청과 모든 관계를 끊고 떠나려 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이 단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을 부정하고, 1960년대 이후 모든 교황의 정통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교황청이 규모가 꽤 큰 교령을 발표한 지 불과 3주 만에 벌어졌다. 교황청은 성 비오 10세 사제 형제회(비오 10세회)가 에콘에서 다시 교황의 승인 없이 주교 서품을 강행하자 소속 주교들에게 파문을 선고했다.

이 두 개의 이교와 교황청의 불만으로 올 7월 분리는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영구적인 체제가 됐다.

표면적으로 볼 때 에콘 사건에 관한 이번 교령은 간결한 법적 문서다. 이교에 대한 형식적 가담과 관련해, 교회가 1988년 사건을 두고 1996년에 발표한 설명에서 이미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법이 아니라, 그 법을 둘러싼 분위기다.

거의 40년 동안 교황청의 본능적인 태도는 손을 내미는 쪽에 가까웠다. 198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자의교서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한 파문 제재의 해제,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희년’ 기간 동안 부여한 유효한 고해성사 집전 권한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2026년의 에콘 사태는 그 흐름을 뒤집었다. 이번 결정에는 비오 10세회가 선택한 결과임을 숨기지 않는 단호함이 있었다. 1988년의 주교 서품은 선의로 해석한다면,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믿었던 한 노인의 마지막 행동으로 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2026년에는 그런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랜 기간 대화의 기회가 제공됐음에도 네 명의 새 주교를 서품한 것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체제를 영속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창설자들이 사라진 뒤에도 이어질 계승 구조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는 전례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제2의 교계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파파 스트론세이의 사례는 이러한 구조가 교정되지 않을 때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지나치리만큼 선명하게 보여 준다.

한 공동체는 로마와의 화해로 출발했지만, 불만이 오랜 시간 쌓이면서 완전한 교황좌 공석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이번에 트란살피나 구속주회가 따르는 주교 계승 계보는 르페브르 대주교의 계보가 아니다. 이른바 ‘툭 계보’다. 이는 교황직 자체가 무너졌다고 믿고 1970년대부터 교황의 승인 없이 주교들을 서품하기 시작한 베트남 출신의 한 대주교에게서 이어진 계보다.

올여름 벌어진 두 번의 불법 주교 서품은 같은 논리 지도를 보여 준다. 수십 년 동안 용인된 모호함이 마침내 굳어져 하나의 구조물이 된 것이다.

교황청의 7월 교령이 거부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용인된 모호함’이다. 정서적으로는 가톨릭이라고 여기면서도, 실제로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안락한 황혼 지대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치를 교황직의 핵심 화두로 삼아 온 레오 14세 교황이 한 세대 만에 가장 엄중한 제재를 내렸다는 사실은 얼핏 역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일치를 기분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의 직물로 이해한다면, 그 역설은 사라진다. 직물에서 한 가닥의 실을 뽑아 다른 옷을 짜기 시작하는 순간, 더 이상 하나의 옷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벌의 옷이 생길 뿐이다.

그럼에도 이번 교령은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교황대사들에게는 복귀의 길을 마련하도록 지시했고, 교회는 스스로를 재판관이 아니라 어머니로 묘사했다.

여기서 단호함은 자비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자비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다. 문턱은 벽과 다르다. 문턱은 누군가가 다시 넘어오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글 _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예수회 사제로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SNS 시대의 신학」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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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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