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20년 전 2005년 6월 29일에 대구 남산동 성모당 옆에 붙어 있는 성 김대건 기념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품을 받았습니다. 수도회 1명과 안동교구 1명을 뺀 순수 대구대교구 새사제만 26명이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교구 역사상 두 번째로 인원이 많은 서품식이었습니다.
이제 서품자의 숫자가 한 자릿수로 바뀌어 버렸으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봅니다. 모르긴 해도 언젠가는 서품자가 1명만 나오는 때도 다가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지금 입학하는 신학생들의 수를 보고 있자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저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당장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머리에 군데군데 있는 새치입니다. 다른 동기 신부들에 비하면 현저히 적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네요. 노안도 한 몫을 합니다. 이제 책을 가까이 두면 흐릿해 보입니다. 돋보기를 끼든지 멀찍이 떨어뜨려 놓아야 글씨가 보입니다. 처음엔 답답하기도 했는데 묵상해 보면 이제는 좀 덜 보고 살라는 하느님의 뜻인가 싶기도 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귀도 슬슬 덜 들리겠지요.
아무래도 보는 것이 덜하고 듣는 것이 덜하면 그로 인해 유혹을 받거나 신경쓸 일도 그만큼 줄어들리라 생각합니다.
외적인 모습과 기능은 그런데 내적인 면은 어떨까요?
사실 시간이 내면을 자동으로 바꾸는 일은 없습니다. 내면의 성장세는 시간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 시간을 ‘허송세월’하면 아무짝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 되고 맙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많은 본당에 있는지라 그런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여전히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연세에 비해서 딱히 성숙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셨구나 하고 묵상하게 됩니다.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보입니다.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상당히 젊으신 편인데도 내면의 깊이가 성숙해 있는 어른을 보게 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딱히 내세울 만한 배움도 없고 그저 땅만 경작해 온 분인데 내면의 깊이가 참으로 깊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든든히 들어차 있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여러가지 충돌 끝에 삶의 지혜를 배우신 분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혼은 사실 시련 속에서 성장합니다.
육체적인 운동과 비슷한데 근육도 여러가지 무거운 기구를 들게 하고 평소보다 무게감이 있는 것을 들어야 성장하는 것처럼 영혼도 자신이 늘 견딜만한 일들보다 당황스럽고 고민스럽고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인내도 생기고 지혜도 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에게 의탁하는 믿음이 성장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의 모든 주요 인물들은 그러한 과정을 거칩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바쳐야 했고 다윗은 자신의 간음과 살인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쳐야 했지요.
저로서는 20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진 않았습니다. 그간 정말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서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그냥 일어난 사건은 없고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안배하신 일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턴가 그날그날 주어지는 복음이 반드시 나의 삶의 한 단면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항상 바오로 사도의 여정을 묵상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분처럼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말은 아직도 나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미숙하고 성장 중에 있으니까요.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갈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는 소중한 것을 지나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시간을 통해서 피라미드를 쌓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하루치의 사랑을 잘 수확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되어 하느님께서 거두어 가실 때 잘 익은 열매가 될 것입니다.
글 _ 마진우 신부 (요셉, 대구대교구 초전본당 주임)
2005년 서품. 남미 볼리비아 동부 산타크루즈에서 선교했으며, 현재 유튜브 ‘겸손기도 신부’(@semitoon)와 블로그(https://semitoon.blogspot.com)를 통해 세상에 말씀을 전하고 있다. 평화방송 TV ‘겸손기도 신부의 와서 보시오’에 출연해 주목받았으며, 에세이집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었다」, 교리서 「포근한 가정 교리서」, 만화책 「SEMITOON」 「PRIESTOON」을 펴냈다. 뼛속 깊이 선교사인 사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