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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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짝사랑, 자식 사랑

[월간 꿈CUM] 꿈CUM 가정 _ 오늘 당신의 자녀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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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 성당


저는 아침에 눈 뜨면 몇 시쯤 됐나,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열고 시간을 확인합니다. 갱년기로 잠을 설치면서부터 생긴 습관이지요. 그리고 나면 TV 뉴스로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대학생 딸은 눈 뜨자마자 밤새 쌓인 미확인 SNS 메시지부터 확인합니다. 지난 주말 아침에도 문자를 확인하던 딸이 남자 친구한테서 온 문자 좀 봐달라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엄마, 이 문자 좀 봐. 아니 얘는 친구들이랑 술을 마신다면서 계속 나한테 문자를 해. 뭐 하냐, 어디로 왔다. 또 뭐 하냐, 2차 왔다. 이제 마무리하고 집에 가려고 한다. 이제 집에 가고 있다. 이제 씻고 잘 거다. 어때?”

“아니, 이건 좀 집착 아니냐?”

듣고 있던 남편이 속없이 농담을 던지며 끼어듭니다.
“아빠는 술 한 잔 마시면, 바로 엄마를 잊어!”

“그렇지, 당신이 그래서 내 인생에서 잊힐 뻔한 거 몰라?”

“안돼, 아빠. 우리는 그러면 바로 끝이야. 엄마, 우리는 이래야 해.”

제 목소리에 날이 서며 남편을 향하자, 딸이 잽싸게 대화 주제를 다시 돌립니다. “집착이 아니지. 엄마, 내가 이러면 걱정할 일도 없고, 의심할 일도 없고. 나는 너무 좋은데? 우리는 1시간 동안 연락이 안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세나가 며칠 전에 남친이랑 헤어졌어. 한 시간 반 동안 연락 안 되더니 나중에 뭐라고 문자가 온 줄 알아? ‘PC방’ 이게 말이 돼? 물론 세나가 더 많이 좋아해.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은 죽어나. 얼마나 애가 타는데. 배려해 줘야지, 배려를! 상대방이 응? 걱정 안 하게 응? 의심도 안 하게 응? 딱, 알아서 좀, 응?”

‘염병하네.’(원래는 ‘놀고 있네’ 등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아이 말을 듣다가 욱해서 올라온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을 뚫고 나올 뻔했지요.

그렇게 잘 알면서! 평소 부모한테는 나가면 함흥차사요 감감무소식이냐고요. 그나마 반응이라곤 ‘자꾸 전화 좀 하지 마라. 친구 만난다고 했는데 왜 자꾸 물어보냐, 알아서 한다. 알아서 들어온다.’ 그 말밖에 안 하냐고요.

이래서 부모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하나 봅니다. 아이 말에 어이가 없다가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가 한편으로는 요즘 아이들의 소통방식, 교제 방식에 좀 놀랍기도 했습니다. 또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않는 아이들은 저렇게 잠시 쉴 틈도 없이 폰으로 친구, 세상과 항상 ‘ON’ 상태로 연결돼 있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부모한테는 예외인가 봅니다.

최근 지인들 얘기로 일본 여행을 간 아들에게 생사 소식을 물으며 사진 좀 보내 보라고 사정을 했더니 라멘 옆에 수저 사진만 보내왔다고 합니다. 또 싱가포르로 해외 취업을 나간 아들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놓고 문자 옆에 달린 숫자 1이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숫자 1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밥은 먹었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며칠째 그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일방적 사랑이 부모 사랑, 엄마 사랑이겠지요?이렇게까지 애닳아 하며 자식을 키우는 이유는 뭘까요?

언젠가 강연에서 소아정신과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를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을 사랑하려고 낳는 것이다’(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라고요.
울림이 컸던 그 말을 되새기며 저의 자식 사랑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너무 과해서도 안 되고 너무 뜨거워서도 안 되며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짝사랑. 제게는 자식 사랑이 이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식 사랑이 한 번씩 허탈해질 때가 있지요?

그래서 저는 요즘 본당 공동체 활동으로 저의 허전한 속을 채우고 있습니다. 공동체 활동 안에서 봉사하며, 성취감과 연결감, 보람으로 제 존재가치감을 느낍니다. 아이에게만 몰두하니 저의 중심이 자주 흔들리고 언제나 그 하나에 죽고 살 것처럼 매달리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저의 사회적 역할을 더 만들고 보니 자식에 대한 걱정이 과몰입되지 않고 분산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한 발짝 벗어나니 자기 성찰과 통찰에도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자식에게서 느끼는 애정 결핍을 요즘은 일상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떠올리며 수시로 채우곤 합니다.

‘예수님, 제가 아이의 연락을 기다리듯 제가 성체조배실로 찾아오길 기다리셨지요?’

‘예수님, 오늘은 아이가 또 학교 가기 싫다고 합니다. 부디 저 아이 혼자 들여보내지 마시고 아이 손을 꼭 잡고 같이 들어가 주셔요.’
그러다 보니 이제 잔소리가 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부디 평안한 하루이기 빕니다.  


글 _ 최진희 (안나, 서울대교구 문래동본당)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여 년을 일했다. 어느 날 엄마가 되었고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을 찾아 나서다 책놀이 선생님,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고,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하루 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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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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