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허리를 수술한 자리 실밥을 뽑는 날이라고 첫딸 데레사는 혼자 병원에 갔다. 그 사이, 몇 년 만에 모녀가 미국에서 함께한 날. 나는 낯설고 좁은 부엌에서 몸도 맘도 바쁘다.
미역국을 진한 맛으로 한 냄비 끓여 은근한 불에 올려놓고, 양파, 당근, 버섯, 고기를 채 썰어 볶아 놓고, 돋보기 쓰고 노란 기름기를 샅샅이 떼어낸 닭 다리와 날개를 불고기 양념하여 졸이고,
냉동칸에서 찾아낸 생선을 무 두껍게 깔아 조림하고,
오이와 미역 섞어서 식초에 무쳐 놓고,
마지막 당면 삶아 잡채를 무치고,
이곳(미국)에서 담근 깍두기와 겉절이로 상을 차리니 초대한 손님들이 도착했다.
좁은 방에 좁은 상이지만, 고국의 엄마 손맛은 환상인가 보다.
수술 날 보호자 역할을 해준 첫딸 데레사의 선배와 창세기 성경 팀에서 만났다는 동생뻘인 엘리사벳도 딸 성격처럼 내숭 없이 터프하다.
설거지도 할 시간 없이 나와 딸 데레사의 선배 언니는 외출준비.
생일 맞은 주인공인 딸은 환자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낳느라고 고생한 엄마가 대신 카네기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
환자 딸은 엘리사벳 동생과 케이크 먹으며 수다 떠는 동안, 피아노를 전공한선배 언니 따라 내 생전 처음 가본 카네기홀. 웅장한 연주와 4층까지 가득 찬 관중의 예술적 열정이 감동적이었다. 전철을 타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린 케이크 한쪽 먹고 늦은 시각에 돌아간 딸의 선배 소영 씨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