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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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하느님의 정치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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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종한 BBC 바티칸 특파원 데이비드 더글러스 윌리는 저서 「하느님의 정치가」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적 교황’으로 묘사했다.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종식을 이끌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인권을 옹호한 교황의 행보가 현실 정치의 지형을 바꾼 거대한 외교적 승리였다고 분석했다.

최근 레오 14세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충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을 향해 “정치인이 아닌 훌륭한 교황이 되는 데 집중하라”고 저격했고, 교황은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다. 외교 정책을 세속적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일련의 사건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와 성직자는 과연 비정치적이어야 하는가? 직업적 의미의 정치인(Politician)은 아니지만,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바라보는 정치가(States person)의 역할도 하면 안 되는가? 나아가 참된 ‘하느님의 정치가’로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개념의 혼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교회가 엄격히 금지하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는 ‘정당 정치’와 ‘세속적 권력 투쟁’이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4조가 “성직자는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직자가 특정 정당의 편에 서는 순간, 신앙 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고 영적 목자로서의 보편성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해악 역시 권력을 탐하는 정치권과 신도를 동원할 수 있는 종교계가 결탁하는 ‘정교 유착’과 ‘혐오의 정치화’다.

그러나 정당 정치를 배제한다고 해서 세상의 불의에 침묵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가톨릭 사회 교리는 공동선과 인권 옹호, 평화 증진을 위한 ‘예언자적 사회 참여’를 성직자의 당연한 의무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성직자의 예언자적 발언이 현실 정치의 진영 논리에 이용당하거나 신자 간 갈등을 일으키는 현실적 문제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레오 14세 교황이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진짜 의미에 그 해법이 있다. 교황의 발언은 특정 정치 진영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해 보편적 도덕 가치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행위다. 전쟁을 꾸짖고 이민자를 보호하며 기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일은 세속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 항목일지 몰라도, 교회의 시선에서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교회가 현실 정치에서 진영 논리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사안별 원칙주의’다. 정당이나 인물이 아니라 복음적 가치만을 기준으로 삼아, 여당이든 야당이든 인간 존엄을 해칠 때는 똑같이 비판하고 공동선에 부합할 때는 협력하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양심 형성자로서의 역할’이다. 성직자는 직접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나 투표 대상을 신자들에게 특정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현실 정치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평신도다. 성직자는 신자들이 올바른 양심을 갖고 세상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영적으로 지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 작가 제임스 클라크는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인’이 아니라, 복음의 빛으로 현재와 미래 공동선을 추구하는 ‘도덕적 감시자’다.

교회가 나쁜 정치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무기는 세속의 권력이나 조직력이 아니다. 오직 복음적 진리와 도덕적 권위뿐이다. 특정 진영의 손잡이가 되기를 거부하고, 하느님 정의와 공동선만을 이정표로 삼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치유하는 참된 ‘도덕적 정치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서종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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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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