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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옛날 옛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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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북미 곳곳에는 본래 용도를 잃고 다른 시설로 바뀌었거나 버려진 신학교와 수도회 수련원, 사제·수도자 양성 시설들이 널려 있다. 성소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현상은 지금까지는 대체로 서구에서 두드러진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서구에 성직자들을 보내고 있다.

성소 붕괴의 원인을 추측하는 이들은 여러 설명을 내놓는다. 서로 모순되는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는 사실을 담고 있다.

성직자 성학대와 그 은폐는 교회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사제 독신제도 성소 증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도시의 가톨릭계 이민 공동체와 민족 공동체가 해체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당이 공동체 생활과 교육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사제와 수도자들이 공동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아이들은 가까이에서 사제와 수도자들을 역할 모델로 바라보며 수도 생활을 자신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 소년이 경험하는 교회가 주일 아침 자동차를 타고 성당에 갔다가, 과로와 탈진에 지친 백발의 사제나 외국에서 온 사제가 전례를 거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라면, 그 안에서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소년의 누이는 수녀를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40∼50년 동안 수많은 젊은이가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했고, 자신들이 멀어진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해 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은 과거를 향수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당시에는 지원자가 넘쳐 신학교와 수도자 양성 시설을 확장해야 했다. 이들은 그 시대의 형식과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면, 상당 부분 미화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제직과 수도 생활의 성소가 부족해진 여러 이유를 살펴보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성소가 크게 증가했던 이른바 ‘좋았던 옛날’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많은 남녀가 사제나 수사, 수녀로서 수도 생활을 선택했을까?

과거에는 수도 생활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러한 영향을 주지 않는 여러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이나 성소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부르심은 대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처한 삶의 환경 안에서 싹튼다.

옛날에는 가톨릭 가정이라고 하면 자녀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적어도 이는 가톨릭 공동체 안에 사제직이나 수도 생활의 성소를 고려할 수 있는 후보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오늘날 가톨릭 가정의 자녀 수는 대체로 비가톨릭 이웃 가정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신학교나 수도회 수련원 입회를 생각해 볼 사람 자체가 크게 줄었다.

로만 칼라나 수도복, 수녀복을 입는 것이 명예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아들이나 딸을 하느님께 봉헌했다”는 사실은 어머니의 성적표에 붙는 금별과도 같았다. 사제나 수도자가 된 자녀 역시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적 학대와 은폐 사실이 드러난 오늘날에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거의 사회적 기피 대상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전쟁은 남성들이 사제와 수사의 삶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강력한 계기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다른 전쟁들을 겪은 많은 남성은 자신이 목격하고 행한 일들을 성찰하며 평화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결심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교회는 그러한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길이었다.

수도 생활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진로를 제공했다. 사제나 수사, 수녀가 되면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가톨릭 신자의 취업 기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과거 수도 생활을 선택하게 했던 이러한 동기들이 변한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함께 시작된 교회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신학교와 수도회 수련원에 들어가게 했던 여러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일부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시기적으로 겹쳤을 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기도하고, 헌금하고, 순종하는 것’으로 한정하던 가톨릭교회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교회의 사명은 모든 신자에게 맡겨져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로만 칼라나 수도복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남녀 신자들은 과거 사람들이 수도 생활에서 찾았던 것을 ‘세속’의 삶 안에서도 발견한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살아가는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부르신다는 확신 외에, 다른 어떤 이유로 사제나 수도자가 되려 하겠는가?

그리고 어쩌면 다른 동기들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 순수한 부르심은,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언제나 훨씬 드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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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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