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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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가르치는 것은 가능한가

조재선(베드로) 서울 노고중학교 교사, 팍스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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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거대한 먼지로 지구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돌아가며 교사 역할을 한다. 간호사였던 사람이 응급처치법을 알려주고, 식물에 관해 잘 아는 이가 약초나 감자 요리법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 가끔 미적분이나 역사를 가르치는 어른도 있는데, 아이들은 세상이 망해가는데 쓸데없는 걸 가르친다고 불평한다. 누구를 가르치는 행위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하는 의미심장한 언급이 이어져 나온다. 이 말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임이 틀림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특히 가치관이나 신념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아할 때가 많다. 우리 세대는 반공교육을 지독하게 많이 받았다. 어릴 때 6월이면 반공 포스터, 반공 글짓기, 반공 웅변대회가 열렸다. 친구 중엔 각종 웅변대회를 휩쓸 만큼 대단한 녀석이 있었다. 그 아이는 처음부터 소리를 지르지 않고 논조를 말할 때는 차분히 말하고, 감정을 섞어 말할 땐 고개를 흔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호소했다. 그 친구 웅변을 듣고 있으면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잔혹한 만행에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연극배우로 사는 그 친구도, 또 그 웅변을 듣고 감동하던 나도 지독한 반공주의자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 세대는 노동과 인권, 자주를 중시하는 신념을 내면화했다.

의회에서 입법하는 사람들은 특별법을 만들어 그 시행령으로 학교에서 교육을 하도록 정하면 그것이 잘 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에게 이른바 다문화 교육을 하면 ‘다문화’라는 단어를 이주배경 학생에 대한 지칭으로 사용한다. 장애 이해 교육을 하면 ‘장애’에 더 편견을 가진다. 북극곰을 살리고 우리는 죽인다며 환경교육을 지겨워한다.

여자 도덕 선생님이 양성평등에 관해 가르치면, 왜 선생님은 군대에 안 갔느냐고 따지며 수업 시간을 오히려 여성에 대한 혐오로 뒤엎으려 한다. 이번 배재고 사태 및 스타벅스 홍보 사태와 관련해 현대사 비중을 늘리고 민주시민교육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 사회에 퍼진 혐오 문화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맞다. 그런데 학교 교육을 통해 가치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와 신념은 명시적 가르침보다 살면서 겪는 인격적 체험 속에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가치 교육은 놀랍게도 지독한 차별과 배제다. 하지만 지금의 내신 등급제를 유지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고급 영문 독해나 미적분보다 더 걷어내기 힘든 가치관을 내면화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등급으로 나뉘고, 최상의 등급을 받은 사람만이 사회적 재화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가치관을 배울 것이다. 딸아이와 동갑인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입학식 연단에 서서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들이 모두 내 아이와 경쟁해야 하는 아이들이구나’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을 어릴 때부터 많이 배웠다. 하지만 재화가 없으면, 또 남보다 낫지 않으면 한없이 불안하도록 자극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여전히 초조할 뿐이다. 딸에게 이 초조함을 물려주고 싶진 않다. 그러려면 나부터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집과 차도 있고 직장도 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등락 폭이 큰 코스피 지수를 쳐다보고 있고, 주차장에 들어찬 수입차를 부러워하며, 비슷한 성적이던 친구들이 얼마나 성공했나 검색해보고 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러하니 어찌 아이들에게서 배움이 일어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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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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