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5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귀향

[월간 꿈CUM]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02)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노르베르토(Norberto)의 ‘프란치스코의 귀향’ 청동상.(2006) 기사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섰던 프란치스코가 말을 타고 귀향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에 있다.


우리나라 고려 19대 왕 명종 재위 시절이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후진(後陣)과 성가대석이 완공된 그해였다.
1182년,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중부 소도시 아씨시에서 태어났다.

포목상이었던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프랑스 출장 중이었다. 아버지는 부재중. 그래서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요한(조반니)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나중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프랑스인 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란치스코’로 바꾼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김프랑, 이미국, 박중국, 최일본, 김영국’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프랑스 출장에서 큰 계약을 성사시킨 기쁨 때문에 아들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했을 수 있다. 혹은 아들이 프랑스를 오가는 큰 사업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프란치스코가 출생할 당시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 여행은 요즘도 쉽지 않다. 1100년대 후반, 아버지가 외국 출장을 갔다는 것은 그만큼 프란치스코 집안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부자였으니 당연히 프란치스코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자란 프란치스코는 차츰 사치에 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옷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분에 넘치는 비싼 옷감들을 항상 몸에 걸치고 다녔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단순히 놀기만 좋아하는 그런 젊은이가 아니었다. 동시대 기록을 보면 프란치스코는 예의를 중시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점잖지 못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료들

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격식에 어긋나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게 프란치스코는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2025년 1월), 초등학생이 장래에 희망하는 직업 1위로 ‘문화, 예술, 스포츠 전문가 및 관련직’이 꼽혔다. 여기에는 유튜버, 연기자, 가수, 운동선수, 연극 영화 연출가, 공연 기획자, 공연예술가, 화가, 디자이너, 작가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800년 전 아씨시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는 달랐다. 유튜버가 아니었다. 그들의 꿈은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한 멋있는 말 위에 앉아 늠름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기사는 당시 아이들의 로망이었다. 프란치스코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씨시를 지배했던 헨리코 6세 황제가 1197년 사망하자, 아씨시 시민 계급이 귀족들에 대항하는 시민전쟁을 일으켰다.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세력 확장을 꾀한 것이다. 이때 프란치스코도 시민 편에 서서 전쟁에 나섰다. 상인 계급이었던 프란치스코 집안은 돈은 많았지만 귀족은 아니었던 상황. 아마도 전쟁을 통한 새로운 질서 체계를 꿈꿨을 것이다. 초반에는 시민 계급이 승리하는 듯 보였다. 귀족들을 아씨시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잠시 인근 페루자로 피신했던 귀족들이 페루자 귀족들과 함께 다시 아씨시를 공격했고, 이때 프란치스코는 포로로 잡혀 1년여간 옥살이를 한다. 이후 아씨시 시민과 귀족 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고, 아씨시와 페루자 사이에도 평화 협정을 이뤄져 프란치스코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기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야망이 컸다. 아버지처럼 사업가가 되어 돈 벌 생각은 없었다. 그는 명문 기사 가문 귀족을 찾아가려 길을 나섰다. 재력을 동원해 귀족 기사의 호감을 얻는다면 명예로운 기사 작위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번듯한 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여행을 위해 프란치스코는 갑옷 등 각종 기사 장비를 갖추기 위해 꽤 많은 돈을 들였다. 그런데 여행에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란치스코는 심한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때, 음성이 들려왔다.

“너를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분은 누구냐.” 프란치스코가 응답했다.

“주인님, 당신입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에 음성이 명령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거기에서 네가 무엇을 할지 듣게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첫 회심의 씨앗이 이렇게 뿌려진다.

아씨시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 정원에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한 병사 모습의 청동상이 있다. 그가 바로 기사가 되려고 길을 나섰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오는 프란치스코다. 고개 숙인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프란치스코는 지금까지 걷던 길에서 완전히 180° 다른 새로운 길을 걷는다. 물론, 고향으로 막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아씨시 밤 골목길을 걷던 그 순간 ‘번쩍’ 하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동시대 벗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당시 프란치스코는 모든 육체적 감각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는 감미로움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는 강력한 어떤 힘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달라진다. 그는 원래 나병 환자를 싫어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길 가다 나병 환자를 만나면 환자의 손에 입을 맞추고 재물을 나눠주었다. 직접 나병 환자 마을에 가서 사람들의 손에 일일이 입을 맞추고 큰 돈을 기증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는 부귀영화, 그리고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세속적 명예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
다. 차츰 세속적 소란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아씨시 근교에 있는 한 동굴(카르체리 은둔소)에 찾아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회심, 그리고 회개의 생활이 시작된다. 친구들의 눈에 프란치스코는 지금까지 알던 프란치스코가 아니었다. 씨앗이 뿌려졌고, 뿌리가 내려졌다.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펴지기 시작했다. 꽃망울이 터지는 그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8-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8. 15

지혜 11장 24절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