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성인이 구유를 만든 곳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그레치오의 동굴(성 루카의 성모동굴) 십자가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였던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가
어느 날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타는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철로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간디는 신발을 주울 겨를이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다. 동행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간디의 그런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내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짝마저 가진다면, 요긴하게 신고 다니지 않겠습니까?”
배려는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는 마음이다. 기차가 떠난 후에도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면, 간디가 간직한 자신의 신발도 쓸모가 없어졌을 게 아닌가? 간디는 국가가 멸망의 길로 가는 일곱 가지 조건을 이야기하며 염려했다. 원칙 없는 정치, 윤리 없는 경제, 노동 없는 자본,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믿음이었다.
어떤 소경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서 밤에 돌아오는데, 스승은 등불 하나를 건네주었다. 소경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에게 등불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답했다.
“자네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네가 든 등불을 보고 피해갈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는 스승의 깊은 마음에 감복하면서 등불을 들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그와 마주친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비웃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군!
앞을 보지 못하면서 등불은 무엇 때문에 들고 다니지?”
이말을 들은 소경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등불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스승은 타인을 위하고 자신을 지키는 지혜의 등불을 소경이들고 가도록 해주었고, 소경은 그것을 잘 간직하며 길을 갔던 것이었다.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왜냐하면 비난을 받고, 자존심도 상하며, 바보 취급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희생이 배려의 삶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이웃을 배려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또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올바른 삶이기도 하다.
사람은 평생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주변 이웃의 윗사람과 아랫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원만하고 바람직한 삶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나보다 먼저 남을 배려할 때 이루어진다. 그러하지 못하고 선인장처럼 자기 보호만을 위한 가시를 곤두세우고 타인의 삶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왕따 인생을 살아 불행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도 온 율법과 예언서가 전하는 가장 큰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마태22,36-40 참조)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지만, 그를 믿는 그리스도교인들은 싫어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기도는 하면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남을 배려하는 희생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 서품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