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의 ‘아담과 하와’(1510~1520),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흙에서 온 인간
인간(Homo, 호모)은 흙에서 왔다.(창세 2,7 참조)그리고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
그래서일까. 인간을 뜻하는 라틴어 ‘호모’(homo)는 ‘흙, 땅, 대지’를 뜻하는 ‘후무스’(humus)에서 유래한다. 라틴어 단어의 의미로만 본다면 인간이 흙이고 흙이 인간이다.
호모(인간) 이외에도 후무스(흙)에서 파생된 많은 라틴어 단어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후밀리따스’(humilitas)가 있다.
후밀리따스는 ‘겸손’이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마지막 순간에 흙에 묻힐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성에서 겸손을 묵상한 것이다.
후무스(흙)에서 유래한 다른 라틴어 단어로는 ‘후마니따스’(humanitas, 인간성), ‘후마니스무스’(humanismus, 인본주의, 인문주의), ‘후마누스’(humanus, 인간의), ‘후마시오’(humatio, 장례, 매장), ‘후모르’(humor, 습기) 등이 있다.
이 모든 단어는 인간주의, 인문주의, 인본주의를 뜻하는 영어 ‘휴머니즘’ (humanism)과 연결된다.
또 겸손을 의미하는 영어 ‘휴밀러티’(humility)도 라틴어 ‘후밀리따스’(겸손)에서 유래한다.
휴가의 계절
휴가철이다. 휴가, 방학을 뜻하는 영어 ‘버케이션’(va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시오’(vacatio)이다.
교구장 주교님이 부활, 성탄, 성소 주일 등 중요한 전례나 행사에 맞춰 교구 신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때 신학생 대표가 환영 인사를 하는데(이때 입이 닳도록 주교님을 칭송한다 ^^), 끝부분에 가서 이런 말을 살짝 덧붙인다.
“주교님께 2박 3일의 ‘바카시오’를 청합니다.”
그러면 신학생들은 “와~” 하고 함성을 지르고 발을 구른다.
특별 휴가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안될 줄 뻔히 알면서 한 번쯤 찔러보는 것이다. 이때 주교님의 말은 매번 똑같다.
“신학교 학장 신부님께 여러분의 ‘바카시오’ 의견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학장 신부에게 공을 넘기는 것은 바카시오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학장 신부가 특별 바카시오를 허락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래 로마 군인들의 휴가를 의미했던 바카시오는 ‘해방, 쉼, 평안, 축제일, 의무에 대한 면제, 은퇴’의 뜻도 가지고 있다. 드물게는 특별한 문장 안에서 ‘안식’ ‘영면’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카시오의 반대말로는 ‘오푸스’(opus, 일, 작업, 역사; 役事), ‘오페라’(opera, 일, 노동, 수고, 노고), ‘라보르’(labor, 일, 노동, 노역) 등이 있다.
‘본다는 것’의 의미
영어에서 비디오(video)는 ‘영상’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비데오’(video)에서 유래한다. 이 라틴어 ‘비데오’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비디야’(vidya)와 그리스어 ‘이데’(ide)에서 왔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것이, 산스크리트어 비디야와 그리스어 이데는 원래 ‘보다’라는 뜻이 아니다. ‘지혜’ ‘통찰’ ‘직관’을 의미했다.
동일한 어근의 말이 노르웨이에 가면 ‘비텐’(viten)이 된다. 이 말은 ‘지혜, 슬기로운, 현명한, 분별력’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이 어원의 말이 독일에서는 ‘바이제’(weise, 현명한, 지혜로운) ‘비쎈’(wissen, 알고 있다, 이해하다)이고, 영국에서는 ‘와이즈’(wise, 지혜로운, 현명한, 슬기로운), ‘위즈덤’(wisdom, 지혜, 슬기, 현명함)이 된다.
결국 영어의 비디오와 와이즈, 위즈덤은 모두 ‘지혜’ ‘통찰’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비디야(vidya)와 그리스어 이데(ide)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보다’와 ‘지혜’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단어다.
참으로 본다는 것, 참 지혜, 참 현명함….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시력이 닿는 공간 저 너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