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 14세 교황은 7월의 마지막 사흘 동안 ‘국경’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줬다.
첫 번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첫 교황인 그는 7월 29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미국인인 교황이라기보다, 우연히 미국인으로 태어난 교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했다기보다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바꿔 말한 셈이다.
교황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부정하지 않았다. 자유와 기회의 약속, 오랜 이민자 환대의 전통에 대해 따뜻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레오 14세 교황이 말하는 미국은 단순히 아름다운 이야기만으로 설명되는 나라는 아니다. 그의 조부모는 이민자였으며, 어머니 쪽 집안에는 노예였던 사람과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이 모두 있었다.
교황이 자신의 역사로 품고 있는 미국은 새로운 이들의 도착과 배제, 상처와 약속이 함께 얽혀 있는 나라다. 이러한 유산은 그가 이주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가 됐다.
두 번째 국경은 실제 국경이었다. 사흘 뒤 삼종기도에서 교황은 북아프리카 해안에 자리한 스페인령 세우타를 언급했다. 세우타는 아프리카와 유럽이 맞닿는 문턱과도 같은 곳이다.
교황은 “세우타의 우려스러운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며, “평화와 안정, 정의를 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아프리카의 성모에게 전구를 청했다.
사태의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7월 30일 대부분 젊은 모로코인들로 이뤄진 수만 명이 육로로 국경을 넘거나 바다를 헤엄쳐 세우타에 도착했다. 스페인 내무부는 입국자가 약 7만2000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인구 약 8만4000명인 세우타 주민 수와 맞먹는 규모다.
며칠 안에 약 7만 명이 자진 귀국하거나 모로코로 송환됐다. 스페인 내무부에 따르면, 남아 있는 이들 가운데 약 1000명은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다. 잠정 사망자는 77명에 이르렀다.
이 같은 대규모 이동에는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된 잘못된 정보가 영향을 미쳤다. 해상으로 입국한 사람들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에 관한 법원 판결이 마치 ‘국경이 개방됐다’는 발표인 것처럼 왜곡돼 퍼진 것이다.
유럽의 첫 반응은 의심과 경계였다. 그러나 8월 4일 유럽연합(EU) 각국 내무장관들은 스페인에 대한 “전적인 연대”를 선언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국가 안보와 심지어 테러 위협까지 이유로 들며 비유럽인을 대상으로 스페인과 연결되는 항공·해상 교통에 대한 검문을 다시 강화했다.
하지만 지리적 현실을 보면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세우타에서 스페인 본토로 이동하려면 누구든 경찰 검문을 통과해야 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번에 새로 입국한 사람 가운데 단 한 명도 유럽 대륙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이탈리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동 경로에 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교황이 언급한 세 단어, ‘평화·안정·정의’는 외교적 언어로서는 익숙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 힘은 세 가지를 서로 떼어 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의 없는 안정은 단순한 봉쇄가 될 수 있다. 존엄이 없는 평화는 검문소 앞의 침묵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국경을 다루는 행정적 언어는 사람을 흔히 숫자와 이동량, 위험요소로 환원한다. 교황의 말은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보이게 했다.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교황의 언급 역시 이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교황이 됐다고 해서 그의 출신이 지워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출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역사는 교황에게 자유와 기회라는 언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러한 약속과 함께 존재했던 배제의 기록도 보여준다. 이민을 통해 세워진 나라는 정작 이민 문제가 현재형으로 다가왔을 때 자신 역시 이민의 역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흔히 던지는 정치적 질문은 교황이 ‘이주민을 옹호하는가’이다. 하지만 레오 14세 교황의 삶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국경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사 한가운데에 하나의 국경이 지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세우타에서든 미국에서든 국경은 단순히 한 국가의 영토가 끝나는 지점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경은 한 사회가 누구를 사람으로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과거 가운데 어떤 역사를 기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장소다.

글_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예수회 사제로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SNS 시대의 신학」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