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실 기자(힐데가르트)
한낮의 폭염을 간신히 버티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열대야가 연장전을 요청한다. 주야로 더위에 들볶이느라 올여름엔 ‘에어컨의 심리적 효과’도 도통 작동하지 않았다. ‘에어컨의 심리적 효과’란 언제든지 에어컨을 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더위는 참을 수 있는 어떤 심리상태를 뜻한다. 사전에 등재된 바는 없고, 내가 만든 용어다.
폭염 일수가 무려 31일을 넘었던 지난 2018년, 찜통에서 탈출하는 심정으로 에어컨을 샀다.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 샀지만, 펑펑 쓰지는 못했다. 손님이 올 때, 잠이 계속 깰 때, 정신이 혼미할 때 등 나름 사용 불문율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1년에 열흘 남짓 쓰려고 이 비싼 걸 샀나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해마다 폭염 일수와 기간이 늘어나면서 에어컨 사용에 대한 죄책감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집에 있을 때만 켠다’는 전제 조건도 ‘한 명이라도 못 견디면 켤 수 있다’로 완화됐다. 재택근무와 열대야가 겹치면 하루 종일 에어컨이 돌아가기도 했다.
폭염 때문에 생활방식도 바뀌었다. 창밖으로 어슴푸레 새벽빛이 비치면 벌떡 일어나 냉수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집중력이 필요한 일들을 기상 후 3~4시간 안에 모두 처리하느라 바빴다. 폭염에 흐물흐물해질 오후의 나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어서다.
태양에 꼬리를 잡힐세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를 보며 몇 년 전 제주 여행이 떠올랐다. 우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동네 산책을 나섰다가 영화 ‘트루먼 쇼’ 같은 장면과 맞닥뜨렸다. 길에도 밭에도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인구가 1800명 남짓한 작은 섬이라곤 해도 어떻게 사람이 코빼기도 안 보이지? 이 넓은 땅콩밭은 그럼 죄다 기계로 일구는 건가?
의혹을 잔뜩 안고 우도성당에 들렀는데, 그토록 안 보이던 주민들이 성당에 소복하게 앉아있었다. 할머니들은 이미 밭일을 끝내고, 곱게 차려입으신 참이었다. 우도본당 주일 미사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해 있을 때 돌아다니는 건 ‘육지사람’ 뿐이었던 거다.
수천 년을 이어온 선조의 지혜대로 자연은 맞서거나 정복할 대상이 아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태양·땅·비·바람을 사는 동안 잠시 빌려 쓸 뿐이다. 임차인의 지위를 망각한 대가로 우리는 지금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기후재난을 자초했다. 지구는 이제 온난화를 넘어 열탕화의 시대에 진입했다. 올여름 한반도와 유럽 전역을 강타한 유례없는 폭염은 ‘바로 지금 여기’ 현재진행형인 인류 공멸의 전조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독한 혹서기의 끝자락, 입추가 왔다. 열기 가득했던 하늘에 바늘구멍이라도 난 듯 가볍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날이 서늘해지는 아침은 아주 먼 곳에서 더디지만 확실히 가을이 온다는 신호다. 인간이 만든 복잡다단한 변수를 넘어 지구의 복원력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절기의 신비에 이토록 감동한 적이 또 있었을까. 입추 매직은 하느님의 용서이자 사랑이었다.
좀 살만해졌다고 지독했던 폭염 속 지구의 경고를 잊을까 봐 ‘친환경 생활수칙’을 다시 찾아봤다. 82억 명의 지구인이 입고 먹고 쓰며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회용품을 사용하고, 가급적 채식을 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줄여야 한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도 살 길이 보일락 말락 한 위기 상황이다.
기후학자들은 이대로면 2100년경 지구표면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최고 3℃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때의 인류에게는 더 이상 생존의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74년 전에는 그래도 입추 지나면 살만했었는데”라며 이 여름을 울며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