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노동하는 인간을 다시 묻다 <하>- 노동을 통해 사랑의 문명을 세우다
레오 14세 교황의 회칙 「고귀한 인류」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회칙은 “새로운 기술조차 공동선을 향하여 방향 지어질 수 있다”고 선언한다.(227항) 기술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다. AI는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배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자유와 안전, 창의성과 참여를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화’하는 일이다. AI와 자동화가 인간을 위험하고 반복적인 노동에서 해방한다면, 그로 인해 생겨난 시간과 성과는 인간이 더 창의적으로 일하고, 가족과 이웃을 돌보며, 배움과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특히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고귀한 인류」 155항은 노동법과 노동조합, 협동조합과 복지제도가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AI와 새로운 시장 구조, 플랫폼 노동의 확산 앞에서는 기존 제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하며, 정치 지도자와 노동조직, 기업과 과학 공동체가 새로운 협력과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아울러 노동조합도 새로운 고용 형태에 종사하는 이들을 대표하고 보호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AI 시대의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기계가 얼마나 많은 일을 대신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인간에게 어떤 일을 남기고, 어떤 새로운 인간다운 일을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고귀한 인류」는 노동을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타인과 협력하며 공동선에 기여하는 가운데 창조주의 일을 이어 가는 길로 본다.(148항 참조) 또 노동은 인간 존엄을 드러내고 인격적 성숙으로 이끄는 과정이며(149항), 자기표현과 관계 형성, 공동체 참여의 장이다.(154항) 따라서 AI 시대 노동사목의 과제는 ‘직업 보호’를 넘어 노동을 통한 ‘인간 형성’에 있다. 선한 노동은 인간과 공동체를 함께 성장시키고, 창조질서의 근원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낸다.
이 부분에서 기업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고귀한 인류」는 “기업가적 주도권은 부를 창출하고 삶을 향상시키는 진정한 소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157항) 기업가 정신은 단순한 이윤 창출이 아니라 사람과 자원, 기술을 연결해 인간다운 일과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힘이다. 따라서 AI 시대 기업의 리더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술 관리자가 아니라, 더 안전하고 창의적이며 의미있는 일을 설계하는 공동선의 건설자가 되어야 한다.
느헤미야기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이러한 공동체적 노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너진 성벽은 한 사람의 힘으로 복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나누고 함께 일하며 공동체 안전과 희망을 되찾았다. AI 시대에도 노동자와 기업가, 과학자와 교육자, 정치와 시민 사회, 교회 공동체가 서로의 역할을 다할 때 기술은 인간을 배제하는 바벨탑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선을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고귀한 인류」라는 제목은 기술보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을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을 증진하고 공동선을 이루는 데 사용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고결함을 뜻한다. 노동을 통해 사랑의 문명을 세우는 일,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와 기업가, 교회와 사회 모두에게 맡겨진 공동의 소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