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절요」(1864). 성호경, 천주경, 신경, 천주십계, 성교사규, 죄, 덕행 등을 풀이한 가톨릭 교리서이다.
1905년 당시, 경기도 안성 지역에서 사목 활동을 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앙투완 공베르(A. Gomber) 신부님은 자신의 선교지에 대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지난 봄, 본인은 박해 시절의 예비 교우였던 노인을 죽음에 임박하여 대세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서울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약간의 교리 공부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박해가 발생하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두 헤어졌고, 어느 외교인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이 협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묵주(默珠) 두 개, 고상, 문답 등 여러 가지의 성물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50세가 넘은 후로 그녀의 남편은 성당에 나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천주교의 중요한 교리는 잊어버리지 않고 가끔 천주경(天主經)과 성모경(聖母經)을 외웠습니다.
1904년 가을에 그녀는 병이 들어 눈에 보이게 쇠약해졌습니다. 올해 4월,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어느 교우를 불러 그의 성물(聖物)을 맡기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신부님께 가서 내 이야기를 해줘요. 나는 하느님을 알고도 섬기지 못했소. 죄가 많아요. 적어도 이 물건만은 더럽혀지지 말아야 해요. 내가 아직도 영세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럴 수만 있으면 오죽 좋겠소.’
본인은 우선 본인의 복사(服事)와 회장을 병자에게 보냈습니다. 그녀의 남편과 딸은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에 굴복하였습니다. 남편 자신이 그녀를 변호했습니다.
‘일생 동안 이 사람의 단 한 가지 소원은 신자 생활을 하는 것이었소. 내가 그것을 막았지요.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셔도 됩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마음으로는 신자였으니까요.’
그녀는 중요한 교리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영세 준비를 시키기가 쉬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주었습니다. 성수로 이마를 적셨을 때 행복해하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을 거역하는 일이 있을까봐 당장 죽기를 원할 정도였습니다. 며칠 후 그녀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그 후 딸과 남편이 벌써 여러 번 성당에 나타났는데 그들까지도 입교하는 은총을 입기를 빕니다.”
이 보고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발생한 박해’란 1866년 병인박해를 일컫습니다. 그리고 당시 여성이 시집 갈 나이는 15세 전후였습니다. 또한 그녀(할머니) 나이가 50세 되던 때에 남편이 성당을 가는 것조차 금지했다면, 그때는 시기적으로 1900년 정도가 됩니다. 그런 다음 공베르신부님의 보고서가 1905년에 작성된 것이기에 이를 종합해 보면 이 글의 주인공 할머니는 천주교에 정식 입교는 못했지만, 최소 40년간 오로지 하느님 자녀가 되기만을 갈망하며 사셨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1895년 8월 28일 고종과 뮈텔 대주교가 경복궁에서 만났으니, 1905년당시에는 조선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때였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할머니는 병이 들었고, 죽음에 임박해서 대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바랐던 1905년 당시 할머니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어릴 적에는 조선 정부에서 천주교를 박해하는 바람에 세례를 받지 못했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의 반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던 삶. 그렇지만, 한평생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외우면서, 묵주, 고상, 교리서 등을 품고 다녔던 할머니의 믿음. 언젠가는 하느님 자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의 열정!
그러한 마음은 결국 40년이 지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신앙을 반대했던 그 가족들의 마음까지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요즘 한국 천주교회 분위기를 보면 쉽사리 신앙에 입문해서 세례를 받지만, 이내 곧 신앙 실천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아 ‘쉬는 교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진단이 있겠지만, 역사에서 답을 찾을 때면 이는 믿음에 대한 ‘열정의 결핍’이 아닐까 합니다.
박해를 겪은 후 40년 동안 천주교 신앙에 대한 간절한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기도문을 외우며, ‘묵주’, ‘고상’, ‘교리서’ 등을 간직하면서 살았던 할머니의 진심어린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믿음을 향한 할머니의 열정은 가족을 감동시켰고, 대세를 준 사제도 감동시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마음까지 감동을 주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열정’을 만나면 진심이 드러나게 마련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글 _ 강석진 신부 (요셉,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88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1997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1998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역사 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주교구 내 ‘개갑 순교성지’(전북 고창 소재)에서 성지 담당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강석진 신부의 인생 수업」(가족편, 관계편),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