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국내 유일 진폐증 전문치료 제공…현장 경험 전공의 교육
1960년대 국내 최초로 직업보건 전문기관을 열었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탄광을 찾았다.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직업병에 노출되기 쉬운 근로자들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서다.
서울성모병원은 국내 전공의 수련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진폐증 전문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방문은 병원을 찾는 진폐증 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제 작업환경과 직업성 질환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20년 넘게 운영돼 온 현장 수련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명준표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와 전공의 4명 등 의료진 9명이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을 찾은 건 지난 11일. 의료진은 첫날 진폐재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열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진이 지난 11일 건강강좌를 열고 진폐증과 진폐 환자 보호 방안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진폐증 환자 약 2만 명…2024년 사망자 506명
탄광이 감소하며 어느덧 우리에게는 잊혀진 병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분진으로 인한 직업성 폐질환인 진폐증은 여전히 업무상 질병사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진폐증 환자는 약 2만 명, 진폐 사망자는 506명에 이른다.
과거 1970~80년대 석탄과 주요 광물 채광이 활발했던 강원도 도계와 태백 일대에는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청춘을 보낸 진폐재해자와 가족이 아직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잠복기 때문에 과거 노출자가 뒤늦게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 진폐증 치료와 산재 관리, 산재 사망 역시 해당 지역에서는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러나 거리 등의 문제로 전문 강좌를 쉽게 접할 수 없는 데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악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진은 건강강좌 등을 열어 산재 진단과정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합병증 예방관리 및 약물치료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사망시 업무 관련성 평가 등을 안내했고 현장에서 개별 상담도 진행했다. 전공의들 역시 환자, 가족들과 직접 묻고 답하며,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산재 판정의 배경을 현장의 언어로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의학 교과서만으로 배울 수 없는 열악한 탄광 '현장 체험 '
방문 이튿날은 내년 폐광을 앞둔 국내 마지막 탄광인 강원도 삼척 경동광업소 채탄 현장에서 광부의 노동 환경을 체험했다. 전공의들은 회사 측의 안내로 갱도 끝까지 내려가 석탄을 채취하고 운반하는 과정을 몸소 경험했다. 의학 교과서만으로 배울 수 없는 진폐증의 요인이 되는 열악한 환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진과 전공의 등 의료진이 12일 강원도 삼척 경동광업소 탄광 현장을 방문해 지하 깊은 작업장과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이처럼 미래의 의료진들이 실제 탄광 내부 깊은 곳까지를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현장 질병 요인과 환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교육 기회는 국내에 흔치 않은 사례다. 특히 산재 판정을 내리는 의료진으로서 단순히 서적이나 영상과 같은 간접적인 정보습득이 아닌, 현장에 대한 정보와 경험은 향후 진료실이나 병실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교수들의 설명이다.
현장을 방문했던 김동근 전공의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것으로 진폐와 진폐의 원인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 막장까지 내려가 탄분진 등 진폐를 일으키는 유해요인을 몸으로 체험한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며 "앞으로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날의 경험이 진료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밝혔다.
"탄광 문을 닫아도 현장 방문해 진폐재해자 살필 것"
진폐증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는 명준표 교수 역시 2005년 전공의 시절 탄광 현장을 방문해 몸소 체험했던 인연이 있다. 명 교수는 "전공의가 환자 곁과 작업 현장을 함께 경험해야 환자진료에 진심을 다하고, 산재 판정 시 현장을 이해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내년에 탄광이 문을 닫게 돼도 앞으로도 꾸준히 사업장 현장을 방문해 진폐재해자 건강을 살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진폐증은 조기에 진단하고 꾸준히 관리하면 건강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진단 이후 진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조기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진료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는 1962년에 국내 최초 직업보건 전문기관인 직업환경의학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1965년 국내 최초로 직업병 클리닉을 개설했다. 1973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국내 최초의 민간 직업보건협력기관으로 지정됐다. 석면폐증, 악성중피종, 폐암, 폐섬유증, 진폐증 등 직업성·환경성 호흡기질환의 진단·보상·예방과 국내 산업안전보건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