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9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속(內) 천불(千佛)나시는 예수님

[월간 꿈CUM] 인생의 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San Giovanni in Laterano,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


우리말에 “속이 천불난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의 본뜻은 “속(內) 안에서 천불(千佛), 아주 많은 부처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토록 많은 부처님이 필요할 정도로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럴 때 우리는 속이 타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속 천불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예수님도 속(內)이 천불(千佛)난다고 하십니다.

왠지 아십니까? 신자들이 주일미사 밥 먹듯이 빠지고, 기도는 하루에 10분도 하지 않고, 성당에서는 걸핏하면 패를 갈라 싸우고, 만나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보시면, 더 나아가 신자들이 세속의 향락과 쾌락에 빠져 허덕이는 모습을 보시면 정말이지 예수님 속이 천불나지 않겠습니까? 아니 천불(千佛)이 아니라 만불(萬佛)도 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1)

언뜻 들으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이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사실 당시 메시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는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선포되어 왔었고, 그래서 메시아는 바로 ‘평화의 사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곧 ‘평화의 왕’이며, 그분의 탄생은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당신 자신을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온 방화자로, 나아가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온 전쟁 방조자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시는 불은, 미움 가득한 세상을 태워버리는 분노의 불이 결코 아닙니다. 복수와 증오의 불이 결코 아닙니다. 수많은 인간에게 고통과 비참함을 겪게 하는 그런 불 또한 아닙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불,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그 불은 바로 세상을 정화하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이 불은 타락한 인간들의 오만함과 불손함을 불사르고,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드러내는 불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불을 세상에 가져오는 정의로운 불의 전달자이십니다. 예수님의 근본적인 사명은 바로 묵은 이스라엘 백성을 정화하고, 나아가 타락하고 썩어빠진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데 있습니다.

불은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쾌락과 물질로 타락한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정의와 심판의 불이시며, 온갖 유혹에 빠져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남김없이 태우시는 사랑과 정화의 불이십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과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을 태우는 이 정화의 불길 앞에서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정의의 불 앞에서,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설 것인가를 분명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들 간에도, 이웃들 간에도 만남과 충돌의 분기점이 되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중대한 삶의 분기점에서 우물쭈물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근본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 엇갈릴 때, 분열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마지막 척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종류의 가치와 판단의 척도를 가진 사람들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우리는, 복음과 일치되지 않는 사상체계나 정치적, 사회적 관습, 그리고 쾌락과 물질적 타락에 빠진 이 세상의 악에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스스로 태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태웠고, 무엇을 태우고 있습니까? 진정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과 정의의 불입니까? 세속적인 쾌락과 욕망의 불입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정의의 불로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미움과 증오, 탐욕과 교만, 시기와 질투를 모두 태워버립시다! 하나도남김없이 재가 될 때까지 깨끗이 태워버립시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1991년 사제 서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을 지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8-2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8. 29

마태 4장 4절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