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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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노르치의 줄리안의 편지 : 외로움과 아픔 속에 있는 분들에게

[월간 꿈CUM] 영성의 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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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저는 노르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입니다. 14세기 영국 노르치 줄리안 성당 옆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저를 ‘줄리안’이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이름도 내세울 것 없고, 세상에 남긴 업적도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저 같은 작은 이에게도 당신의 깊고 자비로운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살던 시대는 흑사병과 전쟁, 교회의 분열로 가득한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했고, 고통은 끝없는 밤처럼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저 역시 병으로 죽음 직전에 몰렸고, 그 어둠 속에서 하느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제게 16가지 환시를 보여주셨습니다.1)

그중 가장 깊이 제 영혼을 흔든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로 저를 바라보셨고, 그 눈동자에는 정죄도, 분노도 없었습니다. 오직 사랑과 연민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All shall be well. And all shall be well. And all manner of thing 
shall be well.”2)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이 제 영혼에 불처럼 스며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상처가 결국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는 신뢰의 고백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말씀은 저의 내면을 감싸는 새로운 빛이 되었고,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분께서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중 누군가는 외로움 속에서 “나는 혼자인가?” 하고 묻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 누군가는 “내 아픔은 하느님도 외면하신 게 아닐까?” 하고 눈물짓고 있을지도요.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서로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만큼 더 깊은 내적 고립과 정서적 외로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SNS 속의 수많은 말들 사이에서 진심 어린 위로를 찾기 어렵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마음을 나눌 사람은 적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청년은 진로와 관계 속에서, 중년은 책임과 무력감 속에서, 노년은 상실과 침묵 속에서 외로움을 체험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을 전 세계적 정신 건강 위기로 지적하며, 공동체적 돌봄과 영적 치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3)

그러나 저는 확신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주님은 이 순간에도 당신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방 안에, 침묵 속에, 눈물 속에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죄와 고통으로 무너지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순간을 통해 더 깊은 자비로 우리를 감싸십니다. 당신이 실패했다고 느낄 때조차, 주님은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나는 단 한순간도 너를 떠난 적이 없다”고 속삭이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우리 존재 깊은 곳을 꿰뚫는 관계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침묵을 공허로 오해하지만, 저는 침묵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침묵은 그분이 말씀하실 준비를 하시는 자리였고, 고독은 그분의 자비가 스며드는 문이었습니다.4)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도 저의 삶을 회상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이며, 이 사랑 안에 신뢰로 우리를 맡길 때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참된 평화로 이끈다”.5)

교황님의 말씀처럼, 제가 받은 계시는 세상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습니다. 그 신뢰는 십자가 아래에서 시작되었고,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밝혀주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느님의 눈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서, 당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느껴보세요.

그분은 분노의 신이 아니라, 자비의 어머니이십니다. 정의의 칼이 아니라, 당신을 안아줄 따뜻한 품입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결코 버려진 적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아멘! 

글 _ 이수완 교수 (로마노,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영성신학)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2019년부터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회의 순교영성 강학에서,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디에고 데 판토하의 「칠극」 등을 영성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가톨릭 신앙인들의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각 교구 및 본당에서 ‘성인들의 삶과 영성’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영적인 가르침을 소개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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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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