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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계속되는 노동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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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7초짜리 영상이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확산됐다. 영상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은행 앞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인도 출신 이주 노동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 경비원이 그에게 호스로 물을 뿌렸다. 또 다른 남성은 그를 발로 차고 그의 소지품을 흩뜨렸다.

그의 이름은 사피우딘 파키르 모하메드였다. 그는 인도 타밀나두 출신의 39세 남성으로, 2024년 요리사로 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왔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고용주가 수개월 동안 여권과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다. 신분증명 서류와 수입을 잃은 그는 갈 곳 없는 거리로 내몰렸다.

영상은 사회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해당 은행은 사과하며 경비원이 외부 용역업체 소속이었다고 밝혔다. 경찰과 노동 당국도 조사에 나섰다. 한 활동가의 도움으로 사피우딘은 거처를 찾았다. 이후 체불 임금이 정산됐고, 여권도 돌려받았으며, 인도로 돌아가기 위한 절차도 마련됐다.

이는 다행스러운 구호 사례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더 어려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착취당하는 이주 노동자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현대판 노예제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가?”

8월 23일은 국제 노예무역 철폐 기념의 날이다. 이 날짜는 1791년 8월 22~23일 밤, 오늘날 아이티에 해당하는 생도맹그에서 노예들이 노예제에 맞서 대규모 봉기를 시작한 일을 기억하기 위해 정해졌다. 이 봉기는 아이티 혁명의 전환점이 됐고, 결국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 독립 공화국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주 노동자 착취를 과거의 노예제와 단순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날은 중요한 교훈을 전한다. 노예제를 폐지했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착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판 노예제는 역사책 속 노예제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쇠사슬이나 채찍, 노예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노동자를 막대한 빚에 빠뜨리는 취업 알선 비용에서 통제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허위 고용 약속, 임금 체불, 여권 압수, 협박, 이동 제한, 체포와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이주 노동자에게 취약성은 일할 나라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모집 대행업체가 거액의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이미 빚을 진 채 도착하고,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틴다. 그런 상황에서 고용주가 임금을 주지 않거나 여권을 빼앗으면 떠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대부분의 고용주는 이들을 잘 대한다. 그러나 아시아 곳곳에서는 가사 노동자들이 폭행, 성적 학대, 감금, 음식 제한, 과도한 노동 강요, 임금 미지급, 심지어 살해까지 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사적인 가정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이러한 학대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남을 수 있다.

여기에서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지닌다고 가르친다. 이주 노동자는 가난하거나, 외국인이거나, 미등록 상태라는 이유로 인간성이 줄어드는 존재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복해서 인신매매와 현대판 노예제를 비판하며, 인신매매를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불렀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히 음식과 거처, 긴급한 도움을 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 사람들이 처음부터 착취에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질문해야 한다.

사피우딘의 경험은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단순히 “왜 한 남자가 은행 밖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가”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가 왜 수입을 잃었는지, 왜 그의 여권이 빼앗겼다는 주장이 나왔는지, 왜 안전하게 갈 곳이 없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노예제는 폐지됐고 인권은 법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착취는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살아남아 있다. 이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법은 권리를 보호하지만, 착취는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취업 알선 과정에서 생긴 빚, 압수된 여권, 지급되지 않은 임금, 강제 노동, 고립된 가사 노동자의 현실 속에서 말이다. 가난과 권력, 이윤 추구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하찮은 존재처럼 대하도록 허용하는 순간, 인간 존엄성과 자유를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사피우딘은 도움을 받았다. 그의 서류는 돌려받았고, 체불 임금도 정산됐으며, 귀국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조는 영상이 화제가 된 뒤에야 가능했다.

진정한 시험은 착취가 학대로 발전하기 전에, 임금 체불이 노숙으로 이어지기 전에, 취약성이 인신매매로 변하기 전에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8월 23일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날이어서는 안 된다. 이날은 자유가 단순히 족쇄가 없는 상태가 아님을 우리에게 일깨워야 한다.

조셉 마실라마니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언론인이다. 40여 년 넘게 다양한 언론사에서 일하며 사회와 경제, 정치를 비롯해 종교 분야에 관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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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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