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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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사제의 눈] 눈의 집,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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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는 네팔과 중국 국경에 있다. 그 외 안나푸르나·마나슬루·칸첸중가 등 지구에서 해발 8000m가 넘는 산 14개 중 8개가 네팔에 있다. 이렇게 높다 보니 내린 눈은 녹지 않고 만년설이 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을 이은 산맥의 이름을 ‘눈의 집’이라는 뜻의 ‘히말라야’라고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범접하지 못하는 히말라야를 성산(聖山)이라며 경외했다.

그런 네팔의 산 정상에 있는 만년설이 녹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 건 최근이다. 눈이 내려야 할 때에 비가 내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빙하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빙하의 속도는 21세기 들어 2배 이상 더 빨라졌다고 한다. 녹은 물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신이 슬퍼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네팔에서 대형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해 많은 이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네팔에 수력발전소를 짓기 위해 파견된 우리나라 직원들도 고립 또는 실종되었다. 터져 나온 홍수는 하류의 평화로운 마을을 삼켜버렸다. 사망자 대부분이 성산(聖山)을 찾아온 순례자였다. 레오 14세 교황은 “피해를 본 모든 이와 함께한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번 네팔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말한다. 과학자들은 히말라야 지역이 빠르게 뜨거워지면서 산의 바위를 단단하게 잡아주던 만년설이 녹아내려 홍수가 났다고 분석한다. 천연 접착제 역할을 하던 만년설이 녹아내리자 산사태가 발생하고 녹은 빙하는 쓰나미급 급류가 되어 계곡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1조차 되지 않는 네팔에서 벌어진 참사는 기후위기가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화석연료를 태워 풍요를 누리는 이들과, 화석연료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이들은 달랐다. 경제 선진국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빙하 홍수와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는 재난에 대응할 경제적 자원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홍수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명백한 ‘기후 불평등’의 현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난한 이들이 크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살아온 이들이 이상 기후로 초래된 재난을 맞이하는 비통한 현실에 무관심하다고 교황은 말했다.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선진국이 경제 호황을 누리는 동안 아무런 책임도 없는 가난한 이들이 삶을 담보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결국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인류의 양심을 묻는 ‘윤리적 과제’이자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의 문제다. 지구라는 ‘공동의 집’이 무너져 내릴 때 약자들을 외면한다면 그 어떤 지속가능성도 논할 수 없다. 국제사회는 환경 파괴의 책임을 지닌 주체들에게 엄중한 책무를 물어야 한다. 네팔 재해는 무분별한 폭주를 멈추고 전 지구적 연대와 책임으로 전환하라는 인류를 향한 마지막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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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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