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주교회의, 정부 낙태약 도입에 즉각 비난…“생명 포기하지 않는 지원부터 이뤄져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정부가 16일 낙태 약물 정식 도입을 발표한 데 대해 가톨릭교회가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성평등가족부는 이날 브리핑을 열고 “임신 9주 이하 임신부를 대상으로 낙태 유도 약물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 낙태약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에 주교회의는 즉각 ‘질서 있게 포장된 낙태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단계적 지원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임신 9주든, 병원과 약국에서든 낙태약물은 자궁 안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며 “관리를 단계적으로 정교하게 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국회 입법을 우회한 행정 방안은 결국 행정 방안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낙태죄 후속 입법 등 법 개정 없이 낙태약물부터 도입하는 처사를 지적한 것이다.

 

정부는 앞서 “낙태약 도입 초기 2년간 병원에서 처방과 조제를 함께 시행한 뒤, 이후 제반 여건이 갖춰지면 의사 처방하고 약국에서 조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주교회의는 임신 주수와 조제 방식에 따른 관리 수준의 차이가 낙태 자체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반박했다. 

 

“생명에 경계선 그을 수 없어”

 

주교회의는 교회의 생명윤리적 가르침에 따라 정부가 정한 ‘임신 9주’라는 기준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주교회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자기 낙태는 목적이든 수단이든 무고한 인간 생명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행위라고 가르친다”며 “‘질서 있게 관리되는 낙태’는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국가의 제도 안에 정착시켜 그것을 정상적으로 당연한 절차처럼 오해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정한 ‘임신 9주’라는 경계선은 태아를 보호하는 선이 아니라 생명을 없애도 되는 대상을 정한 선”이라며 “인간 생명은 수정 순간부터 시작하며 임신 9주 태아도 이미 온전한 하나의 인간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근거로 “실정법이 어떤 부류의 인간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보호를 거두어들이는 순간 국가는 법 앞의 평등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며 “생명에 경계선을 그어 그 안쪽을 보호 밖에 두는 일을 ‘완화된 조치’라고 부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교회의는 정부가 제시한 ‘단계적 도입’ 역시 낙태약의 제한적 허용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로드맵이라고 비난했다. 한성숙 국무총리가 ‘초기 2년간 병원에서 관리한 뒤 의사 처방·약국 조제 방식으로 전환·확대하겠다’고 밝힌 점을 들어 “이는 낙태약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고 일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낙태약물의 도입 방안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평등부 제공

“접근성 확대보다 여성 안전 우선돼야”

 

주교회의는 낙태약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주교단은 성명에서 “미프진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자궁외임신 여부 확인과 정확한 임신 주수 확진을 위한 의사의 진찰, 응급 상황에 대비한 관리를 전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고위험 약물”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번 방안의 2단계인 ‘약국 조제’는 그 핵심 안전장치인 의사의 진찰을 제거한다”며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여성의 안전을 내어 주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주교단은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제기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국회의 입법을 요청한 만큼, 낙태와 관련한 중대한 제도 변화는 행정적 결정만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회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주교단은 “아무리 정교한 행정 방안도 국회의 입법과 국민적 합의는 대신할 수 없다”며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를 함께 저울질하는 중대한 문제는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깊이 숙고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가 낙태약물 도입 과정에서 종교계 등을 포함한 사회적 숙의를 거쳤다고 박힌 데 대해서도 주교단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낙태약 확대 아닌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지원을”

 

주교단이 제시한 대안은 낙태약의 확대가 아니라 위기임신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주교회의는 “정부에 간곡히 요청한다”며 “낙태약을 확대하는 로드맵이 아닌 위기에 놓인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의 로드맵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구체적으로 위기 임신 상담을 비롯해 주거와 생계 지원, 의료와 돌봄, 성폭력 피해자 보호, 한부모 가정 지원, 출산 이후의 양육 지원 등을 단계적으로 확충하고 ‘남성의 책임’도 단계적으로 강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정부가 ‘제반 여건’을 갖추어야 할 대상은 약국에서 손쉽게 약을 내어주는 체계가 아니다”라며 “아이를 낳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여성이 참으로 자유롭게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달라”고 말했다.

 

주교단은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을 대립시키는 방식으로는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는 가장 약한 생명을 없애 여성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회가 아닌,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게 함께 책임지는 사회”라고 거듭 밝혔다.

 

아울러 한국 천주교 역시 위기 상황에 놓인 임신부와 가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주교단은 “한국 천주교도 위기 앞에 놓인 임신부와 가정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상담과 돌봄, 물질적·영적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며 “이미 낙태를 경험한 이들에게도 정죄가 아닌 치유와 용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가 낙태약물 도입 방안을 다시금 숙고해주길 바란다”며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여성을 실질적으로 돕는 길을 선택해 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당부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이하 ‘주교회의 낙태 유도 약물 도입 성명문’ 전문

 

 

정부의 ‘단계적 낙태 유도 약물 도입’ 방안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 질서 있게 포장된 낙태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단계적 지원을 촉구합니다 -

 

 

정부는 앞으로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낙태 유도 약물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초기 2년은 병원에서 처방과 조제를 함께 하고, 이후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면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 방식으로 전환·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앞선 논의보다 한결 정돈되고 신중해 보이는 듯하지만, 한국 천주교회는 이 방안이 낙태를 ‘질서 있게’ 제도화할 뿐 그 본질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며, 오히려 생명 경시를 우리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하며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첫째, 절차의 정교함은 생명을 앗아가는 본질을 바꾸지 못합니다.

 

임신 9주든, 병원과 약국에서든, 이 약물은 자궁 안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관리를 단계적으로 정교하게 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직접적인 낙태는 목적이든 수단이든 무고한 인간 생명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행위라고 가르쳤습니다(58항, 60항, 62항 참조). 오히려 ‘질서 있게 관리되는 낙태’는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국가의 제도 안에 정착시킴으로써, 그것을 정상적이고 당연한 절차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죽음을 더 매끄럽고 조용하게 만드는 일은, 그 죽음을 옳게 만들지 않습니다.

 

둘째, ‘임신 9주’라는 경계선은 태아를 보호하는 선이 아니라, 생명을 없애도 되는 대상을 정하는 선입니다.

 

인간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되며, 임신 9주의 태아도 이미 온전한 하나의 인간 생명입니다. 따라서 ‘9주까지 허용한다.’는 기준은 태아를 위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9주까지의 생명은 국가의 보호에서 제외한다.’고 선을 긋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가르치듯, 실정법이 어떤 부류의 인간에게서 마땅히 주어야 할 보호를 거두어들이는 순간, 국가는 법 앞의 평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2273항 참조). 생명에 경계선을 긋고 그 안쪽을 보호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완화된 조치’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셋째, ‘단계적 도입’은 제한이 아니라 확대와 정착의 로드맵입니다.

 

국무총리는 초기 2년의 병원 관리 이후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 방식으로 전환·확대”하겠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이는 이번 방안이 부득이한 제한적 예외가 아니라, 처음부터 낙태약에 대한 접근을 넓혀 가기 위해 설계된 것임을 드러냅니다. 초기에는 병원이라는 통제된 틀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고, 이후 그 틀을 풀어 접근을 확대하는 방식은, 낙태약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고 일상화하는 첫걸음입니다. 이미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도입된 뒤에는 ‘여건이 갖추어지면’이라는 이름으로 안전장치가 하나씩 걷혀 갑니다.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면 확대하겠다.’는 표현 자체가, 이 방안이 향하는 방향을 스스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넷째,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방안이 스스로 안전을 무너뜨립니다.

 

미프진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자궁 외 임신 여부 확인과 정확한 임신 주수 확진을 위한 의사의 진찰, 그리고 응급 상황에 대비한 관리가 전제될 때에만 사용하도록 하는 고위험 약물입니다. 그런데 이번 방안의 2단계인 ‘약국 조제’는 바로 그 핵심 안전장치인 의사의 진찰을 제거합니다.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여성의 안전을 내주는 것입니다. 결국 정부가 도입의 명분으로 삼은 ‘안전’은, 방안이 확대되는 그 순간에 스스로 허물어집니다. 이는 태아의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조차 실질적으로 지키지 못하는 길입니다.

 

다섯째, 아무리 정교한 행정 방안도 국회의 입법과 국민적 합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입법을 요청했습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를 함께 저울질하는 이 중대한 문제는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깊이 숙고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계와 조건을 촘촘히 담았다 하더라도, 국회 입법을 우회한 행정 방안은 결국 행정 방안일 뿐이며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합니다.

 

이에 정부에 간곡히 요청합니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은 낙태약을 확대하는 로드맵이 아니라, 위기에 놓인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지원의 로드맵입니다. 위기 임신 상담, 주거와 생계 지원, 의료와 돌봄, 성폭력 피해자 보호, 한부모 가정 지원, 출산 이후의 양육 지원을 단계적으로 확충하고, 남성의 공동 책임을 법적으로 강화해 주십시오. 정부가 ‘제반 여건’을 갖추어야 할 대상은 약국에서 손쉽게 약을 내주는 체계가 아니라,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참으로 자유롭게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입니다.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을 서로 맞세우는 방식으로는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는 가장 약한 생명을 없애 여성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는 사회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임신의 위기 앞에 놓인 여성과 가정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상담과 돌봄, 물질적·영적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이미 낙태를 경험한 이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치유와 용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 가겠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이 방안을 다시 숙고하여,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여성을 실질적으로 돕는 길을 선택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 사회가 가장 약한 이들의 편에 설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9월 16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생명운동본부 위원장 문창우 주교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곽진상 주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9-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16

이사 35장 4절
힘을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우리 하느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