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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3,9)

[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구약 성경 _ 듣기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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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_ 김 사무엘


예수님은 비유를 자주 사용하십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의 사건이나 자연의 요소를 이용하여 심오한 진리를 전하는 이야기로서, 예수님 당시 널리 퍼져있던 문학 양식입니다.

복음서에는 40여 개의 비유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비유 하나가 마태오 복음서에 실려 있습니다. 바로 마태오 복음 20장 1-16절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포도 재배를 하던 이들은 수확 철에 한시적으로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이 비유는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에게 임금을 분배하는 방식을 보는 순간 적게 일한 사람이 많이 일한 사람과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사실 주인이 마지막 일꾼에게도 1데나리온을 주든 말든, 먼저 온 일꾼들이 손해 본 것은 없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속이거나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계약한 대로 일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먼저 온 일꾼들은 자신들보다 적게 일한 마지막 일꾼이 같은 일당을 받았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들은 공평의 원리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평의 원리뿐 아니라 형평의 원리도 필요합니다. 일한 만큼 받는 것은 공평의 원리에 맞습니다. 하지만 일을 못 해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 받아 가는 것은 형평의 원리에 맞습니다.

평의 원리는 정의를 구현하고, 형평의 원리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공평의 원리가 없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고, 형평의 원리가 없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공평의 원칙을 따르면 1시간 동안 일한 마지막 일꾼은 1/12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에 주인은 형평의 원칙을 적용해 하루의 생계에 필요한 1데나리온을 준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준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하늘나라는 포도원 주인과 같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비유가 하늘나라의 어떤 면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하늘나라에서는 공평뿐 아니라 형평의 원리까지 함께 고려된다는 점입니다.

루카 복음 15장 1-7절의 ‘되찾은 양의 비유’도 봅시다. 이 비유는 하늘나라의 또 다른 논리 하나를 보여줍니다. 바로 자비입니다. 목자에게서 떨어진 양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양의 시력은 매우 나쁩니다. 따라서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종종 가파른 비탈에서 미끄러지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집니다. 이런 경우 스스로 힘으로 기어오를 수 없습니다. 또한, 비대한 상체에 비해 짧고 약한 다리 때문에 넘어지기 쉬웠는데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고립되면 야생 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죠. 이런 점에서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비유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읽는다면, 그리고 아마 실제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이 비유를 듣는다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양들은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논리로 귀가 막히면 이 비유의 참된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비유는 양 한 마리도 버려두지 않으시는, 즉 죄인 하나도 멸망하게 두지 않으시는 헤아릴 길 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르코 복음 4장 21-25절 ‘등불의 비유’를 보겠습니다. 이 비유는 지당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기껏 등불을 켜놓고 빛을 가리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죠. 이 빛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모릅니다만, 적어도 한계가 없는 어떤 것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빛은 가리지 않으면 어디까지라도 가죠. 저 먼 우주까지도 말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훨씬 웅변적입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마르 4,24)아, 이 비유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베풀어야 할 자비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능력에 대한 것이군요. 자비심이 없는 마음은 돌처럼 굳은 마음과 같습니다. 닫힌 마음입니다. 이 닫힌 마음에서는 자비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지만, 자비가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자비심이 있어야 자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자가 더 갖게 됩니다! 즉, 자비심이 큰 만큼 하느님의 한계 없는 자비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본 예수님의 비유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함으로써 복음적 현실로 들어가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들어라’라는 명령은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열린 마음으로 듣는 이들, 그들은 복음을 얻을 것이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아마추어미술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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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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