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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의 혼인 잔치

[월간 꿈 CUM] 성화로 읽는 신약 성경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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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베로네세, 카나의 혼인 잔치, 1563년, 캔버스에 유채, 666x990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는 티치아노가 세상을 떠난 뒤 틴토레토와 함께 16세기 베네치아 황금기를 주도했던 ‘위대한 베네치아 화가’ 로 손꼽힌다. 그는 성경의 주제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최초의 순수 화가로 불린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그는 색다른 원근법과 단축법 등 매너리즘의 요소를 흡수했으나, 작품에서는 특유의 눈부신 빛과 색채를 지녀 웅장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가 1563년에 그린 ‘카나의 혼인 잔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베네치아 남쪽 작은 섬에 있는 ‘산 조르조 마조레 수도원’을위해 제작되었고, 수도원은 그림 주제로 요한복음 2장 1-12절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 잔치’를 지정하면서 크기와 등장인물과 색채까지도 일일이 지정했다. 당시 34세의 베로네세는 15개월에 걸쳐 이 그림을 완성했는데, 235년 동안 수도원에 걸려 있다가, 나폴레옹에게 약탈되어 루브르 박물관으로 실려 갔다. 13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도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베로네세의 동시대 인물들이 뒤섞여 등장하는데, 카를 5세, 프랑수아 1세, 술탄 솔리만 그리고 마리 튀도르와 같이 당대의 유명 인사들을 찾아볼 수 있고, 베로네세와 동료 화가들도 출연하는 등 성경의 주제를 세속적인 모습으로 전환시킨 대담한 작품이다.

1796년,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인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 들어가자마자 대대적인 예술품 약탈을 시작했고,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서만 5백여 점의 걸작 미술품을 탈취했는데, ‘카나의 혼인 잔치’는 약탈 목록의 맨 윗자리에 있었다. 

나폴레옹은 화폭을 절반으로 자른 다음 액자에서 뜯어내어 파리로 실어 왔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찢어진 두 폭은 다시 이어졌고, 대대적인 수선 과정을 거친 후에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자랑스러운 전리품인 이 작품은 파리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이 그림에는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사도들을 제외하면 당대에 유행하던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베로네세는 이것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옮겨 놓았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 만남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의상으로 대변되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 위아래의 구조로 대변되는 천상과 지상의 만남, 안과 밖의 대칭으로 대변되는 인간과 건물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왜 이 그림에는 하늘이 유난히도 많을까? 

혼인 잔치는 장차 천상에서 있을 구원의 잔치를 앞당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기적을 당신 영광을 드러내신 첫 번째 표징으로 행하셨다.

또 이 그림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신랑과 신부로 보이는 사람이 부모님과 함께 앉아 있고, 당대의 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객으로 앉아 있다. 오른쪽 전방에는 과방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아하게 술맛을 보고 있고, 그 반대편에는 과방장과 대칭되는 또 다른 사람이 신랑 신부에게 술맛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계단 위에는 일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하객들 주위에도 일꾼들이 술을 따르고 음식을 나르고 있다. 그런데 그림의 정중앙인 예수님의 머리 위에서 일꾼들이 칼로 고기를 다듬고 있다. 마치 이 잔치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잔치임을 암시하듯이 말이다.

이 그림의 절정은 예수님 앞에 그려진 악사들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그림의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다. 악사들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티치아노, 틴토레토, 야코포 바사노, 베로네세이다. 그는 왜 악사들을 예수님보다도 더 크게 그분 앞에 그렸을까? 아마도 그는 이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화가와 그 동료들이어야 함을 말하려는 것 아닐까? 만일 혼인 잔치에 향연이 없다면 어떨까? 초라한 분위기일 것이다. 만일 이 세상에 위대한 예술가들이 없다면 어떨까? 삭막한 세상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오늘을 풍요롭게 하는 네 명의 거장이 기적의 주인공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보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제외하면 그분께로 시선을 모으는 사람이 없다. 향연의 주인공인 악사들을 보는 사람도 없다. 저마다 자기 일을 하고, 자기 말을 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곳을 본다. 참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시선이 개들의 시선과 닮았다는 것이다. 왼쪽 사람들은 왼쪽 개의 시선과 비슷하고, 오른쪽 사람들은 오른쪽 개의 시선과 비슷하다. 마치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삶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고, 개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듯이 말이다.  


글 _ 손용환 신부 (요셉, 원주교구 북평본당 주임)
1992년 사제 서품. 원주교구 소속으로 16년간 군 사목을 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북평본당 주임으로 있다. 저서로 「오색의 기도」 「하느님의 가장 좋은 선물」 「사제의 향기」 「맹 신부」 「어리석음의 승리」 「천주교 군종교구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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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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