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솔리노(Masolino, Tommaso di Cristoforo Fina detto, 1383~1440)의 ‘겸손의 성모’ 1415, 나무에 템페라.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
우리 몸 전부는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 저는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를 강하게 느낍니다. 어떤 전지전능한 분 아니고서는 이렇게 완벽한 구조의 인체를 만들 수가 없다는 결론이지요.
그 생각은 아이를 갖고, 태동을 느끼고, 마침내 낳아서 젖을 먹일 때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물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태가 되는 과정이 무엇보다 큰 신비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생물 시간에 다 배워 알고 있으니 차치하고, 제가 가장 신비롭게 느꼈던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수유’ 때입니다.
저는 세 아기를 낳아 모두 모유로 길렀습니다. 교직에 있다가 결혼하면서 사표를 냈고, 아이 기르는 동안 7년을 완전히 주부로서만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지요. 저는 지금도 두고두고 그 일만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혼과 더불어 사표를 내도록 저를 종용했던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3남매를 거의 연년생으로 낳아 기르면서 산후 우울증에 걸릴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68년, 69년, 71년, 이렇게 연속으로 셋을 낳아 길렀으니 말입니다. 그때 무슨 일회용 기저귀가 있었겠습니까? 부드러운 베를 구해다가 손수 적당한 길이로 잘라 양끝을 감침질한 기저귀 50장을 놓고 썼습니다. 요즈음 기저귀처럼 아기가 두어 번 오줌을 싸도 그냥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서, 두어 방울 싼 것도 바로바로 갈아 주어야만 했습니다. 아기를 옆에 눕혀 놓고, 잠결에도 기저귀를 만져 보고 또 만져 보면서 얼른얼른 일어나 갈아주곤 했습니다. 아이 셋 기르면서 한 서너 시간 잠 한번 쭈욱 자 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면 짐작이 되시겠지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 대야에 기저귀가 한가득 쌓였습니다. 날마다 기저귀 빠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베 기저귀는 자주 삶아 써야 했고, 장마철에는 마르지 않아 다림질을 해 가면서 사용했습니다. 세탁기도 없었던 그 시절, 기저귀 빨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유아 때의 아이는 오줌을 싸면 또 젖을 찾습니다. 그러니 자다가도 젖을 물려야지요. 아이를 낳고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은 “대체로 세 시간 만에 젖을 주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모유로 키우건 우유로 키우건 아기는 대체로 세 시간 간격으로 먹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제 몸이었습니다. 아이가 젖을 먹고 나면, 제 가슴은 차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 시간쯤 되면 절정에 이릅니다.
제가 아이를 낳아 기른 때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살던 시절이었는데, 수유 기간 동안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가게 되면 세 시간 안에 들어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때로 시간이 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의 난감함이라니!
55번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에 나가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사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렀습니다. 그 도중 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마침내 절정에 다다라 돌덩이처럼 굳어지게 되는데,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저와 부딪치기라도 하면 저는 자지러질 듯 가슴이 아파서 기절할 지경이 됩니다.
누구랑 부딪칠까봐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시장을 돌다가, 어느 순간 저는 발걸음을 돌려 버립니다. ‘아아, 도저히 몸 참겠구나. 그냥 가자.’ 사야 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달립니다. 다급할 땐 너무너무 돈이 아깝지만 택시를 잡아타
고 달립니다. 그때 제 몸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가슴 밖으로 젖 몇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제 속옷을 적십니다. 저는 가슴이 너무 아파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면서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아기를 보고 계시던 시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
“아이고, 왜 이리 늦게 오냐. 애기가 젖 달라고 운다.”
저는 부지런히 손을 씻고 아기에게 젖을 물립니다. 아이는 그 쪼끄만 제비 주둥이로 젖을 빱니다. 웬 힘이 그렇게 좋은지 한두번 빨아도 저는 살 것 같습니다.
“아, 고마워. 고마워. 이제 살겠다! 자, 이쪽도 좀!”
그렇게 양쪽 젖을 다 먹이고 나면 그 돌덩이 같던 가슴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연식 정구공처럼 말랑말랑해집니다. 오, 그 해방감이라니! 방긋방긋 웃으며 젖을 먹는 아이는 나에게, 나는 또 아이에게 천사가 되며, 우리는 혼연일체의 행복을 만끽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와 엄마의 유기적 관계가 아닌가 합니다. 몸 속에서 아이가 수태되고, 꿈틀거릴 때 유기적 관계가 성립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미 나와 분리된 또 하나의 생명에까지 이토록 끈끈한 관계가 성립되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신비입니까? 이 신비를 체험하면서 저는 절대자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멀리서도 분신을 향해 치닫는 끈!
이 질긴 끈을 우리 여성들에게 주시어 하느님 창조 사업에 동참하게 하시는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수원교구 분당성요한본당)
1940년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만남, 그 신비」, 소설집 「가을, 그리고 山寺」 「가슴에 묻은 한마디」 「비밀은 외출하고 싶다」, 수필집 「아름다운 귀향」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시집 「한 송이 풀꽃으로」,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등을 펴냈다. 2023년 9월, 장편소설 「만남, 그 신비」로 ‘황순원 문학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가톨릭문인협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