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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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을 그 길목에서 (01)

[월간 꿈CUM] 평신도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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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꿈CUM


난 가을에 태어났고 가을에 결혼했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사계절 중에 가을을 참 좋아한다. 걷기를 몹시도 싫어하는 나이지만, 어느 날 문득 높아진 하늘엔 흰 구름이 평화로이 떠 있고, 상큼한 바람결에 낙엽이 흩날리는 때가 되면 가로수를 친구 삼아 걸어본다.

그리고 발 아래 뒹구는 낙엽에 마음이 깊이 머문다. 생명의 근원인 본체(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낙엽은 참 다양한 모습이다. 빛나는 햇빛 아래 아름다운 색깔을 자랑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나부끼는 낙엽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 명랑해 보이고, 찬비에 추적추적 땅바닥에 젖은 낙엽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슬퍼하며 눈물에 젖은 것만 같다. 그리고 아직도 실해 보이는 초록 잎이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는 것을 보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만히 초록 잎에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정작 초록 잎은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조롱이라도 하듯, 자연의 섭리에 순종함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만 같다. 

‘인간의 눈에는 때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의 섭리 안에서는 떨어지는 때가 곧 때라는 것을’, 크로노스(Cronos)와 카이로스(Kairos)의 의미를 말없는 스승이 되어 가르친다.

내 인생 나이를 계절로 말한다면 가을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6.25 전쟁이 나던 해 가을에 태어나, 고유한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영육간 양식으로, 학교 교육의 지적 양분으로, 시대적 환경의 거름을 먹으며 뿌리를 내린 나의 작은 인생나무는 결코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봄을 지나고, 젊음의 영절같은 진초록 여름도 지나, 어느새 칠십 중반, 가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는 나의 작은 나무에 비바람도 몰아쳤을 것이고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걸맞은 꽃도 피었을 것이고, 지금은 맺어야 할 열매도 맺었거나 맺어가는 과정이기도 한 인생의 가을. 그 길목에서 내 삶의 낙엽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떨쳐 버리지 못한 채 붙들고 있는 것들이 외적인 것에서부터 내적인 것까지 하나둘이 아닌지라, 나도 모르게 옷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냉동실을 뒤져 보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 자꾸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장롱 속 가장 깊은 데를 차지하고 있는 편지모음 상자였다.        
          
글 _ 곽외심 (글라라, 수원교구 분당성요한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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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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