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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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수험생 (01)

[월간 꿈CUM]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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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꿈CUM


학기 초면 학급 반장 선출에 관심이 많다. 학생도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근래에는 학급 반장으로 활동한 기록이 입시성적에 반영이 된다니 더욱 열기가 높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반장 선출은 역시 학생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투표로 자기 반의 대표를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크다.

어느 해에는 H 군이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반장은 대체로 체구도 건장하고, 사교성이 많고 활달하며 학과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 선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H 군은 체구도 다소 왜소한 편에 조용한 귀골의 모범생이라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공감하게 되었다.

학과 성적은 항상 수석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통솔력도 있고, 포용력도 많아 친구들의 호감을 사기에는 충분하였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친구에 대한 배려가 누구보다도 컸다. 조용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은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장점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온화함이 있었다.

H 군은 몇 가지 일화를 가지고 있다. 학교 일과가 끝나 귀가하면 씻자마자 바로 공부방으로 간다. 그러고는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는 하던 일도 멈추고 아들 방으로 간다, H 군은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으면 졸음이 쏟아지고, 공부에도 집중이 되지 않아 오래전부터 어머니께 도움을 청해왔다. 때로는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도 많이 들지만 이 고비만 참고 넘기자는 단단한 다짐으로 견딘다.

H 군의 어머니도 한 분의 엄마 수험생이 된다. 아들의 곁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뜨개질도 한다. 때로는 피곤하고 졸릴 때도 있지만 애써 참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고생하는 아들에게 힘이 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오히려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들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입시 전 100일이 되는 날이다. 언제부터인지 이 날만 되면 ‘백일주’라는 핑계(?)로 친구들 간에 한 잔씩 나누는 수험생 문화가 있다.

100일 다음 날이다. H 군의 어머니에게서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제 집에서 백일주 나눔을 하는데 아빠와 형은 S 대학인데 엄마와 누나는 E 대학이니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웃고 있는 아빠가 더 얄미웠어요.”

밝은 목소리는 불평의 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의 말로 여겨졌다.이토록 온 가족이 촌각을 다투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다. 학급담임으로서 내가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천금 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여 이를 아껴 쓰도록 돕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활동에 장애가 되는 것을 최대한 없이해주고 최선을 다하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우리 교실에서부터 시작했다. 교실 앞자리 구석 자리에 교사용 업무 책상을 놓고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로 가지 않고 우리 교실로 들어간다. 밖에 용무를 보고 싶은 학생은 조용히 뒷문을 이용하여 출입한다. 교실에 남아서 공부할 학생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자습을 한다. H 군을 비롯하여 많은 학생이 자리에 앉아 각자가 필요한 공부를 한다. 교사는 그저 앞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학습 분위기는 조성된다.

사랑하는 내 학생들을 위한 교사의 작은 희생이 내 학생의 장래를 좌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보람도 느낀다. 


글 _ 정점길 (세례자 요한,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 38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2006년 3월 「한국수필」에 등단, 수필 동호회 ‘모닥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봉사단 초대 단장, 본당 사목회장,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강사, 노인대학 강사, 꾸르실료 강사, 예비신자 교리교사,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의 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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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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