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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빈방

[월간 꿈CUM] 인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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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 알퇴팅(Altötting) 성모 발현 성지


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며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남들보다 많이 배운 것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지만, 가난과 굶주림과 싸우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 건강 검진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날벼락 같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췌장암 말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평생 살아오면서 남에게 원수진 일도 없고, 오로지 노력과 성실 하나만으로 정직하게 사업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고 난 뒤, 뒤를 이어 사업을 누가 맡아서 경영해 나갈 것인지의 문제였습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배울 만큼 배운 아들들이었지만, 과연 어느 아들에게 경영권을 맡길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하루는 아들 셋을 불러 2층에 있는 빈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돈 1만원씩 나누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1만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이 빈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사오너라. 그러나 내가 준 1만원 이상의 돈을 써서는 안 된다. 이 빈방을 가득 채우는 사람에게 내 모든 재산과 회사의 경영권을 주겠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준 1만원을 들고 각자 빈방을 가득 채울 물건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모두 빈방에 모였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 ‘솜’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준 돈으로 솜을 샀습니다. 빈방을 가득 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솜으로 어느 정도는 빈방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풍선’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준 돈으로 모두 풍선을 샀습니다. 이 풍선으로 빈방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준 돈을 들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시장에는 너무나도 불쌍한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국수 몇 그릇을 사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500원이 남았습니다. 500원으로 무엇을 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저는 양초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막내아들은 양초에 불을 붙여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그러자 깜깜했던 빈방이 촛불로 인해서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촛불 하나로 그 어두운 빈방을 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빈방’은 바로 우리의 인생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 인생의 빈방을 무엇으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까?

인생이라는 빈방을 무엇으로 가득 채우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질이, 우리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의 빈방을 ‘솜’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은 겉으로는 화려한 것 같지만 알맹이가 없는 겉치레의 삶이 될 것이고, ‘풍선’으로 채우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풍성한 것 같지만 부풀려진 삶이 되어 결국 바람에 흩날리는 가벼운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촛불의 빛으로 인생의 빈방을 가득 채우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으로 마음과 가슴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고, 작은 촛불을 준비한 막내아들처럼 사랑으로 가슴 따뜻한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은 끝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내려가는 삶이었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사이에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시고, 그들과 함께 슬픔과 고통을 나누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다운 삶, 참다운 삶의 가치와 의미는 누가 뭐라 해도, 가진 바를 서로 나누며,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형제적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가 경쟁과 자기 안일과 욕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많이 누려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강요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위대함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이 메말라 버린 이 각박한 세상에 움츠려살고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가난한 이웃을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측은히 여기는 마음, 그들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끌어안는 한 방울의 눈물일 것입니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1991년 사제 서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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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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