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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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로 미’(follow me)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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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


남의 나라 땅 이탈리아에서, 이태리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덜컥 차는 빌려 놓고 어디로 어떻게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첫날 밤을 지낼 호텔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가기만 하면 한시름 놓겠는데, 그곳을 어찌 찾아간단 말인가! 내 수중에 있는 그 ‘말도 안 되는 내비게이션.’ 그것은 정말 크기가 작고, 이용법이 난해했는데, 첨부되어 있는 사용 설명서조차 온통 독해 불가능한 단어들로만 가득 차 있었기에 정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떻게라도 호텔까지는 안내를 잘해 주리라 믿었다. 

순간 복음 말씀이 떠올랐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위안과 기쁨에 젖어 들고, 거기에만 기대어 파견된 자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할지도 모르니, 이를 분명히 경계하라 가르치셨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사도들은 각자의 파견지에서 시시각각으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요구하며 찾고 싶었을 테지만, 스승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만을 자기들 삶의 방편이자 안내자로 삼고자 했으리라. 나도 그렇게 사도들처럼 다른 것(내비게이션)에는 의지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작은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돕고 계신 것이라 믿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안전하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사도들보다 더 강한 믿음으로 주님께 의탁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어렵사리 겨우 도착한 호텔은 진정 지상낙원 같았다. 아마도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이러하리라 싶었다. 여장(旅裝)을 풀고, 샤워를 하고, 마트에서 사 온 맥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이내 빠져든 잠. 숙면. 다음 날 찾아갈 바티칸을 꿈에서 미리 가 봤던 것도 같다.

‘말도 안 되는 내비게이션’이었지만, ‘말이 되는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도록 충분히 사용법을 숙지하고 나니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목적지인 바티칸을 검색하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안전 운전을 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새로운 문제가 찾아오고 말았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오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렌트한 차는 또 왜 그리 자주 시동이 꺼지든지! 수동 기어가 달린 차였기에 클러치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 차라리 차를 머리에 이든지, 등에 짊어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태리는 신호 체계가 우리나라와 상이할 뿐더러 버스나 택시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여기저기 헤매면서 아무 길이나 들어가면서 운전을 해댔으니, 결국 혹시나 했던 일이 역시나 벌어지고 말았다. 귀국하여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국제우편으로 배송된 용지 하나를 받았다. 그 용지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내가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서는 딱 하나였다. ‘55 EURO.’

한참을 헤맸던 것 같다. ‘아까 지나온 길 같은데…, 아이고 또 지나쳤네…!’ 하면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앞에 보인 빨간 신호등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섰다. 그때였다. 신호 대기 중인 내 옆에 오토바이를 탄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셨다. 그 아저씨는 내게 손짓으로 차 유리창을 내려 보라고 하셨다. 일단 유리창을 내렸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싼 삐에뜨로? 뽈로 미!”

하느님께서 내게 착한 천사 하나를 보내주신 것이었다. 그 순간 신호등의 빨간 불이 파란 불로 바뀌었고, 아저씨는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하셨다. 내 여행도 빨간 불에서 파란 불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저씨를 쫓아가기만 하면 더이상 길을 헤맬 일은 없으리라 여겨졌다. 왜냐하면 아저씨가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이었는지 직감적으로 이해했을 뿐더러 그 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귓가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날 따라와!”

‘follow me!’를 이탈리아 아저씨가 이탈리아식 발음으로 말했으니 당연히 ‘뽈로 미!’가 되었다. 난 또다시 길을 잃을세라 초집중하면서 아저씨의 뒤를 졸졸 따라갔고, 얼마 후 웅장한 ‘성 베드로 대성당’을 눈앞에 영접하게 되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돈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베드로 대성당의 웅장함과 거룩한 자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 오토바이 아저씨께 감사했다. 그 마음을 전하고자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저씨는 연기처럼 왔다가 또 그렇게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지금도 난 그날이 생각날 때면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아저씨를 ‘뽈로 미 아저씨’라고 부르며 추억하고 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려나? 하긴 천사이시니…. 그날 이후였을까? 나도 ‘뽈로 미 아저씨’처럼 그렇게 묵묵히 앞장서 가며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누군가 자신이 바라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그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기뻐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느끼게 될 만족감은 하느님께서주시는 또 하나의 축복이 되리라. 


글 _ 노성호 신부 (요한 보스코, 수원교구 명학본당 주임)
2004년 사제 서품. 평택 효명고등학교 교목, 수원교구 모산골, 양평, 죽전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명학본당 주임소임을 맡고있다. 한국교회 최초의 노래하는 형제 사제 듀오로, 동생 노중호 신부와 함께 2016년 Nobis Cum (노비스꿈) 1집 ‘우리와 함께’를, 2022년 2집 ‘또 다시 우리와 함께’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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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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