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제자를 체벌하는 성 베네딕토. 수비아코 성 베네딕토 거룩한 동굴 수도원 위층 성당
유럽 신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신자들은 잘 모르는 것이 있다.성 베네딕토의 막강한 마귀 퇴치 능력!
지금 마귀 퇴치가 필요한가? 성 베네딕토에게 전구를 청하면 된다. 유럽 신자들은 ‘베네딕토의 거룩한 패’(聖牌, medal)에 새겨진 ‘사부 성 베네딕도 십자가’ (CSPB, Crux Sancti Patris Benedicti)가 마귀 퇴치에 큰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왜 이런 믿음이 생겨났을까. 베네딕토가 실제로 마귀 축출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도 중 마귀 유혹에 넘어가 정주 규칙(수도원 안에 머물며 수도 생활을 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고 수도원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수도자가 있었다. 밖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는 모른다. 베네딕토는 이 수도자에게 어떻게 했을까.
이탈리아 수비아코 성 베네딕토 거룩한 동굴 수도원 위층 성당에 그려진 벽화에 그 해답이 있다. 그림 왼쪽에 시커먼 마귀가 수도자를 수도원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오른쪽에서 베네딕토는 막대기를 들고 유혹에 넘어간 수도자를 체벌하고 있고, 동시에 왼손으로는 수도자를 축복하고 있다. 이관술의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1」에 따르면 이는 수도자의 잘못에 대한 벌과 용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또 베네딕토가 체벌한 대상은 수도자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방해하는 마귀다. 베네딕토의 호통에 마귀는 비명을 지르며 수도자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수도자는 다시는 마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베네딕토가 쫓아낸 마귀는 어디로 갔을까. 그림 맞은편에 쇠창살이 있는데 쇠창살 안에 쫓겨난 마귀가 그려져 있다. 호되게 혼나고 벌벌 떠는 마귀의 모습에서 베네딕토의 퇴마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그림이 이탈리아 몬테올리베토 대수도원 회랑에도 있다. 이 그림에서도 베네딕토는 수도자의 수도 생활을 방해하는 마귀를 혼내고 있다. 윗부분에 혼비백산한 마귀가 수도자 몸에서 빠져나와 도망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귀는 베네딕토에게 있어서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척결해야 할 원수였다. 자신도 수비아코 동굴에서 은수 생활할 때 마귀의 유혹에 맞서 투쟁한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베네딕토의 믿음과 능력은 자신이 만든 규칙서 2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규칙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수도자의 죄를 묵과하지 말고 싹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베네딕토는 규칙서에서 “먼저 말로 한두 번 타이른 뒤 듣지 않으면, 네 아들을 매로 때려라. 그러면 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이제 가톨릭교회 수도 생활의 시조새, 베네딕토가 우리에게 남긴 영적 보물, 「베네딕토 규칙서」(Regula Benedicti RB - Regula Monachorum)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베네딕토가 생각한 수도생활의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정결과 순명을 맹세한 수도자들이 한 건물 안에서 선출된 수도원장 밑에서, 공동체 규율을 준수하며 생활하는 것.’ 이 이상향을 완성하기 위한 틀이 규칙서다. 머리말과 함께 73장으로 이루어진 규칙서는 영성적이고 이론적인 부분(머리말~7장)과 제도적이고 규율적인 부분(8~73장)으로 나뉜다. 이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것은 기도와 독서, 그리고 노동이다.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Ora et Labora)
여기서 ‘기도하라’는 ‘개인적으로 기도하라’가 아니다. 물론 하루 2~3시간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영적 독서, 거룩한 독서)를 강조하긴 했지만, 베네딕토는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따르고자 했다. 오늘날 모든 수도회와 신학교에서 정해진 시간에 모여 공동기도를 하는, 무려 1500년 전통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베네딕토의 규칙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베네딕토’를 이름으로 채택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리한 내용이 있다.
“위대한 수도승이신 성 베네딕토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참 스승이시며, 그가 세운 학교 교과서인 규칙서에서 우리는 참 인간성을 잘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한국 베네딕토 협의회 엮음, 「코이노니아 선집 6-1, 교부」, 들숨날숨, 2017)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또 있다. 바로 베네딕토의 여동생 스콜라스티카다. 스콜라스티카는 이름도 예쁘지만, 외모도 아름다웠다. 게다가 금수저였다. 나이가 차자 로마 귀족 청년들이 앞다퉈 청혼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도 오빠 베네딕토와 함께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했다.
스콜라스티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오빠 수도원이 있는 몬테카시노로 갔다. 말이 수도원이지 변변한 건물도 없이 작은 초막 하나 세우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리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스콜라스티카로서는 엄청난 희생이었다.
날개 떼고 땅으로 내려온 천사, 스콜라스티카는 1년에 딱 한 번 오빠 베네딕토를 만나 좋은 말씀을 듣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있었다. 만나는 장소는 남자 수도원과 여자 수도원 중간쯤 위치한 한 작은 집이었다.
543년 2월 7일, 그날에도 남매가 만났다. 1년 만의 만남. 날씨가 화사했다.
하늘은 맑았고, 들에는 꽃이 만발했다. 남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덧 석양이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베네딕토는 어두워지기 전에 수도원에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스콜라스티카가 오빠를 붙잡으며 좀 더 천상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를 청했다. 이에 베네딕토가 말했다.
“수도회 규칙은 엄중하다. 오늘은 늦었으므로 너와 나는 각자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스콜라스티카가 기도를 바쳤다. 그러자 지금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엄청난 폭풍우가 밀려왔다. 지붕이 무너질 듯이 비가 쏟아졌다. 돌아갈 길이 막힌 베네딕토가 머뭇거렸다. 그러자 스콜라스티카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제가 지금 하느님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즉시 내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베네딕토와 스콜라스티카는 밤새워 성인의 행복과, 천사의 환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이튿날 날이 밝은 후 각자의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후, 3일째 되던 날. 기도에 몰두하고 있던 베네딕토가 창밖을 보니 동생 수도원에서 백색으로 빛나는 비둘기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스콜라스티카는 그 날 고통 없이 잠들 듯 세상을 떠났다. 하느님은 40일 뒤, 오빠 베네딕토도 하늘로 불러올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