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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9·11 이후 잃어버린 미국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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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가운데 첫 번째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의 첫 반응은 혼란과 불신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비행기가 그 건물에 충돌할 수 있단 말인가?

두 번째 비행기가 두 번째 빌딩에 충돌했을 때, 나도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한 일이었다.

당시 나는 뉴욕에 살면서 <아메리카>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기에 그 공격은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직접적인 사건이었다. 내 머리 한편에서는 사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직원들이 걱정됐다. “모두 무사한가?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하철에 폭탄이 설치돼 있지는 않을까?” 결국 우리는 원하는 직원은 누구든 예수회 공동체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우리의 작은 잡지를 넘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했다. 예수회원이자 부편집장이었던 제임스 마틴은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현장에 가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곧 생존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대신 긴급 구조대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미국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빠르게 하나가 됐다. 모두가 희생자 가족들을 돕고 싶어 했으며, 동시에 테러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붙잡아 처벌하기를 원했다. 결국 우리는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사살했다. 평화주의자인 내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것이 정당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빈 라덴이 이슬람 법정에서 재판받고 처벌받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 미국인들의 복수심은 9·11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이라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데 이용됐다. 군사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거의 없고 이라크에 대한 이해는 그보다 더 부족했던 네오콘 이념가들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말을 구실 삼아 미국을 전쟁으로 끌고 갔다.

미군은 이라크군을 손쉽게 격파했지만, 이라크를 점령한 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 축출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 등을 돌렸다. 우리의 침공과 무능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가 부상할 토대를 줬다.

베트남전쟁 시기에 성장한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가 어떻게 또다시 이런 전쟁에 뛰어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어리석음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이어졌다. 전쟁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전쟁에 나서며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 네 차례의 어리석은 전쟁에서 우리는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원을 소모했고, 수천 명의 비전투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리 군인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날 때마다 우리의 처지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보다 나빠졌다.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

같은 기간 미국인들이 전쟁 비용을 부담하는 동안 경제 운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미국 연방정부는 단 한 번도 재정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지난달 40조 달러에 이른 국가부채는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악화하고 있고 금리는 더 오를 것이다. 그 사이 부유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중산층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희망을 잃었으며, 가난한 이들은 버려지고 있다. 기후 관련 재난은 늘어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권자들이 양당의 엘리트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전쟁에서도, 경제에서도 실패한다면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다. 미국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공동선에 집중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확인하고 레오 14세 교황이 설명한 것처럼 공동선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사람들이 자신의 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쉽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체”다.

이는 전쟁이 아니라 외교를 통해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의료와 주거, 교육,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강력한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통해 공동선을 위해 훨씬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글 _ 토머스 리스 신부
미국 예수회 사제로 1974년 사제품을 받고 ‘아메리카’지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인사이드 바티칸」 등 교회 조직과 정치에 관한 다양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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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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