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는다. 평화를 말하는 것조차 무력하게 느껴지는 시대, 가톨릭교회는 다시 묵주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9월 27일 프랑스 루르드 성모성지에서 전 세계 신자들에게 10월 한 달 동안 묵주기도를 바쳐달라고 호소했다. “전쟁이 멈추고 분쟁 중인 민족들 사이에 평화가 이뤄지도록 기도해달라”는 지향이다. 전쟁을 멈추려면 외교와 정치 등 다각도의 현실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회는 전쟁과 갈등의 순간마다 묵주를 들었다.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진출에 맞서 교황령과 스페인·베네치아 등이 참여한 연합군이 전투를 벌였고, 비오 5세 교황은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요청했다. 레판토 해전의 승리 이후 교회는 이를 성모님의 전구와 연결해 기념했다. 오늘날 10월 7일이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자리 잡은 역사적 배경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묵주기도는 다시 시대의 위기 속에서 강조됐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3년 회칙 「최고 사도직」을 반포하고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정했다. 교황은 위험과 고난의 시기에 신자들이 성모님에게 의탁하며 평화를 청해온 역사를 되짚으면서 성당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권고했다.
묵주 기도의 중요성은 제1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더 뚜렷해졌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세 목동에게 전해진 성모님의 메시지에는 세계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특히 그해 7월 발현에서 성모님은 세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해 날마다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했다.
이후 교회는 전쟁과 폭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승리가 아닌, 평화를 청하는 기도로 묵주기도를 강조해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발표한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40항에서 “묵주기도는 본질적으로 평화를 위한 기도”라고 밝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 곳곳에서 유혈과 폭력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묵주기도가 평화를 위한 기도인 이유는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는 성모송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의 신비를 성모님과 함께 바라보는 관상기도다. 교황은 교서의 같은 항에서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신비를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평화의 비결을 배우고 이를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묵주기도가 세상의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문제들을 책임 있고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한다”고 했다.
묵주기도의 평화가 마음의 평안만을 뜻하지 않는 이유다.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일상에 자리한 미움과 적대, 갈등을 돌아보고 이를 끊어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레오 14세 교황도 이번 호소에서 묵주기도와 함께 ‘참회’·‘자비’·‘대화’·‘화해’를 강조하며 기도에 구체적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은 또 지난 5월 30일 성모 성월을 마치는 묵주기도에서 “평화는 순진한 환상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에서 비롯돼 공동체와 국가를 하나로 묶는 조화”라며 “각자 평화를 위해 매일 헌신한다면, 갈등의 시대에도 평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대도, 전쟁의 양상도 달라졌지만 교회는 평화를 청하며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작은 묵주 알에 담긴 기도는 전쟁이 멈추기를 청하는 데서 나아가 기도하는 자신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전쟁의 시대에 교회가 일깨우는 ‘묵주기도의 힘’이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