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교우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 마리아의 순명과 겸손을 묵상하는 이 거룩한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성모님의 이름을 내걸고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는 가슴 아픈 소식이 들립니다. 최근 교황청은 허락하지 않는 주교 서품을 강행한 성 비오 10세회(SSPX)에 대해 공식적으로 ‘교회에서 갈라져 나갔다’는 뜻의 '이교(Schism)'를 선언했습니다. 관련자는 자동 처벌·파문 제재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뒤편에는 본회보다 더욱 극단적인 길을 걸어간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Marian Corps of Saint Pius X, MCSPX)'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마리아 군단'은 성 비오 10세회가 바티칸 교황청과 화해를 모색하자 이에 반발하여 갈라져 나온 극보수 전통주의 분파입니다. 이들은 교황청과의 어떠한 대화도 '배교'로 규정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통만을 고수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 레오 14세 교황을 정통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체명의 뿌리가 우리에게 익숙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e)'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라틴어로 '마리아의 군단'을 뜻하는 레지오 마리에는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본받아 교구장의 관할 아래 기도와 봉사로 복음을 전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비오 10세회'는 레지오 마리에의 ‘마리아 군단’이라는 영성적 상징을 극단적인 정통 수호 투쟁의 명분으로 가져와 단체명으로 채택합니다. 그러나 교황과 교구장에게 순명하며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레지오 마리에’와, 교황권을 전면 거부하며 교회를 이탈한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은 그 지향점이 전혀 다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사칭할 뿐, 신학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엄연히 다릅니다.
그러니 성 비오 10세회를 비롯하여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에서 주관하는 미사를 포함한 기도 모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구에서 공인된 성당이나 경당이 아닌 곳에서 특이한 복장을 한 사제가 처음 보는 특이한 미사를 한다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셔야 합니다. 최근에는 WYD를 앞두고 한국인을 사제로 만들어서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거기 레지오 마리에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 기도 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황이 계시는 교회와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린 이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하느님, 예수님 무엇보다 성모님 이름 팔아 자기만의 종교, 그들만의 성당을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나주 율리아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는 가톨릭 전례 탈을 쓴 이단, 이교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막는 방법은 신앙을 바탕에 둔 건강한 ‘의심’입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열심을 넘어 '바른 의심'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 가르침이 교황과의 일치 안에 있는가?", "이 열성이 공동체의 분열을 낳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묻고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검증하는 선한 의심이야말로 거룩한 이름을 사칭해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단과 이교를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입니다. 가톨릭 신앙에서 참된 전통은 교황 및 주교단과의 일치, 그리고 겸손한 순명 안에서만 열매 맺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 뜻과 그분의 교회에 대해 완벽하게 순명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은 <거기는 레지오 마리에가 아닙니다>입니다. 묵주기도 성월인 10월, 묵주기도를 바치는 우리가 오만이 아닌 겸손, 분열이 아닌 교회와의 참된 일치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