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 OSV] 레오 14세 교황이 사형제도는 인간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했다.
교황은 10월 10일 ‘세계 사형제도 폐지의 날’을 맞아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사형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의를 실현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감 제도가 마련돼 있으며, 이를 통해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면서도 그들이 속죄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며 “사형에 의존하지 않고도 공동선을 보호하고 정의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들을 보호하면서도 죄를 지은 이들에게서 속죄의 가능성을 완전히 앗아가지 않는 효과적인 수감 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게시글에 ‘사형제도 반대’(#NoDeathPenalty)라는 해시태그도 덧붙였다.
교황의 이번 메시지는 미국 정부가 니달 말리크 하산의 사형 집행 장면을 공개 생중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나왔다. 앞서 10월 9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미국 주교회의 의장은 각각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의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육군 군의관 출신 정신과 의사인 하산은 2009년 텍사스주 포트후드 군사기지에서 총기를 난사해 13명을 살해하고 32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3년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10월 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방송 매체 ‘리얼 아메리카스 보이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산의 사형이 12월 3일 포트후드에서 집행될 예정이며, 그 장면을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겠다. 공개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에 ‘전쟁부(Department of War)’라는 명칭을 부차적·의례적 명칭으로 추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자신을 ‘전쟁부 장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이후 엑스에서도 사형 공개 계획에 관한 발언을 재확인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10월 9일 기자들과 만나 사형 집행 장면을 생중계하려는 계획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누군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무슨 목적에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죽음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형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으며 범죄 억제 효과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폴 코클리 대주교도 10월 9일 미국 정부의 계획에 “충격과 깊은 슬픔”을 표하며 재고를 촉구했다. 코클리 대주교는 바티칸뉴스에 “하산의 행동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결정은 죽음의 문화를 야만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며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개 처형이 미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미국 국민이 언제나 생명을 선택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교구장이기도 한 코클리 대주교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심각한 해악을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공개 처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더욱 훼손하고 국민의 양심에 오점을 남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이시다”라며 “하산의 행동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이번 결정은 죽음의 문화를 야만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인간 생명이 본래 지닌 신성함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67항을 개정해 현대 사회에서 사형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명확히 했다. 개정된 교리서는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발표한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해 “사형은 도덕적 관점에서 부적절하며 형사법적 관점에서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레오 14세 교황 역시 올해 초 자신의 고향인 미국 일리노이주의 사형제도 폐지 15주년을 기념해 가톨릭 사형제도 폐지 운동가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예정대로 하산의 사형 집행 장면을 생중계할 경우 미국 정부가 사형 집행을 일반 대중에게 생중계하는 첫 사례가 된다. 미국 사형제도정보센터(DPIC)에 따르면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공개 처형이 이뤄진 것은 1937년 미주리주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