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로마에 거주하는 한인 사제·수도자들을 만나 분단된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의 일꾼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또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걸으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열정적으로 준비해달라고도 요청했다.
교황은 5일 바티칸 사도궁 클레멘스홀에서 로마 거주 한국인 사제·수도자 159명과 만났다. 서울 WYD 준비와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축복 25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히 마련된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평화를 위한 묵주 기도 5단을 바치고 성가 ‘사랑하올 어머니’를 부르며 교황을 기다렸다. 교황이 입장하자 모두 큰 박수로 환영했다. 지성욱(마리아 프란치스카, 마리아의 종 수녀회) 수녀는 “박수 소리가 우렁차고 끝없이 이어졌다”면서 “우리의 마음이 박수로나마 작게 표현된 것 같다”고 전했다. 교황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교황은 “한국 교회의 역사가 ‘기억과 희망’이라는 두 단어를 전해준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기억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에 감사하며 오늘 맡겨진 일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희망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신”임을 강조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5일 재로마 한인 사제 및 수도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교황은 한국 교회의 두 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를 ‘땀의 순교자’로 기억했다. 최 신부가 11년간 신앙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말씀을 전한 삶을 소개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사랑으로 삶을 내어주도록 부름 받았다”고 일깨웠다. 더불어 한반도에 남겨진 분단의 상처를 언급한 교황은 “판단보다 경청을, 원한보다 용서를 택하라”고 말했다. 2027 서울 WYD와 관련해서는 청년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세상으로 가져가기를 희망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걸으며 대회를 열정적으로 준비해달라”며 대회 주제 성구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를 마음에 새길 것을 당부했다.
이번 만남은 약 30분간 진행됐다. 기도와 연설, 강복이 끝난 뒤 단체 사진 촬영만 예정돼 있었지만, 교황은 참석자 모두와 일일이 악수하고 묵주를 하나씩 선물했다.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정연정 몬시뇰은 “교황님께서 이렇게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박범규(광주대교구) 신부는 “교황님의 따뜻한 마음과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고, 박경수(대구대교구) 신부는 “한국 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주는 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교황님 말씀에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전수진(요안나,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수녀는 “일상의 자리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라는 당부가 크게 다가왔다”며 “로마에서의 배움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희망의 봉사로 이어지도록 더욱 충실히 살아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송준호(춘천교구) 신부는 “최양업 신부님을 신앙의 모범으로 제시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며 “신부님의 시복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했다.
재로마 한인 사제와 수도자들이 5일 레오 14세 교황에게 선물한 테니스화. 교황청립 한인신학원 제공
참석자들은 2027 서울 WYD 로고 조형물과 함께 테니스를 즐기는 교황에게 국내 스포츠 브랜드 비트로(vitro)의 테니스화와 용품을 선물했다. 테니스화에는 교황 서명과 ‘빛을 향하여’를 뜻하는 라틴어 ‘Ad lucem’이 새겨졌다. 선물은 비트로를 운영하는 ㈜학산이 특별 제작해 봉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