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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무엇이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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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부제 서품을 지지하는 이들은 고대 문헌과 미술 작품을 근거로 내세운다.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그 해석의 타당성을 문제 삼는다.

흥미롭게도 고대 사료에 절대적인 확실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당시 성직자들이 혼인했다는 더 분명한 사실에는 침묵한다. 베드로 사도의 장모만이 유일한 ‘교황의 장모’였던 것은 아니다. 결국 고대의 증거 가운데 일부만이 오늘날의 관행을 결정하는 근거로 인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고대 사료의 증거력을 따지는 논쟁은 시간 낭비다. 3세기에 무엇을 했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21세기 교회의 실천을 결정해야 하는가? 모든 시대의 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부인할 수 없는 규범은 1세기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동으로 보여 주신 가르침뿐이다.

여성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루카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활동 생활’과 ‘관상 생활’을 대비시키는 데 이용됐다. 특히 여성들에게 마리아가 보여 준 조용한 경청이 마르타의 활동보다 더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식사 준비가 아니라 마리아의 자세에 있다.

당시 스승의 발치에 앉는 사람은 그의 제자였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그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마르타 역시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마리아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였으며, 다른 제자와 동등하게 그분의 발치에 앉을 자격이 있었다. 여성이 부엌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던 시대, 여성이 온전한 제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급진적인 도전이었다. 마리아는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주장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며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서간들에서도 여러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맡았던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의 뒤를 따랐던 여성들은 제자로서의 동등한 지위를 빼앗겼다. 여성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이 그만큼 강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오늘날 여러 지역에서 예수님의 실천을 왜곡했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여전히 사회와 교회의 ‘정상적인’ 질서에 도전하는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평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은 ‘급진적 여성주의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신앙의 역사에서 최초의 급진적 여성주의자는 예수님 자신이셨다.

그러므로 남녀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또 교회로서 마리아가 받은 온전한 제자직의 소명을 어떻게 저버리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바라신 제자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교회는 여성에게 부제품을 수여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사도행전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구체적인 해답을 남기지 않으신 문제에 직면했다.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과부들이 구호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불평한 것이다. 이를 해결할 선례가 없었기에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했다. 공동체가 일곱 사람을 뽑아 소외된 이들을 돌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곱 사람 가운데 스테파노와 필리포는 처음 맡은 역할을 넘어 복음을 선포했다. 전승에 따르면 나머지 사람들 대부분도 로마 제국 곳곳의 여러 공동체에서 지도자로 활동했다.

교회는 현실의 문제에 직면해 선례가 없자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했고, 그 대응책이 애초의 목적을 훨씬 넘어 발전하도록 허용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당시의 해결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마련한 방식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초기 교회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21세기의 필요와 기회에 응답하기 위해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분열이 심화되는 세상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레오 14세 교황의 사목적 관심, 인공지능(AI)이 가져올 가능성과 위협, 환경 위기는 모두 교회의 창의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1세기나 5세기, 심지어 20세기의 해답조차 오늘날에는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특정 직무를 위해 여성에게든 남성에게든 성품을 수여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교회의 사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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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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