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빈 논설위원
얼마 전 발생한 생성형 AI의 금융 속보 오보 사태는 언론계에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AI는 원금과 이율의 개념을 미세하게 혼동해 첫 문장을 뱉었고, 뒤따르는 모든 통계와 수치를 도미노처럼 엉터리로 계산했다. 작은 실수가 사실이 돼 거짓을 눈덩이처럼 불려 나가는 ‘눈도장 효과(Error Snowballing)’의 치명적 단면이다. 오류의 전개는 논리 정연했고, 데이터 취합 속도는 경이로웠다. 이제 뉴스에서 AI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보도자료 초안을 잡고 녹음 파일을 텍스트로 바꾸는 일은 기본이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기사가 쏟아진다.
과거 ‘로봇 저널리즘’은 단순했다. 증권 시황이나 날씨, 경기 결과 같은 수치를 기계적으로 나열했다. 하지만 지금의 ‘AI 저널리즘’은 차원이 다르다. AI는 수천 페이지의 정부 예산안에서 탐사 보도의 단서를 찾아낸다. 인간 필자의 논조를 흉내 내 그럴듯한 사설과 칼럼도 쓴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은 이미 단순 편집 업무를 AI로 전면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AI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냉혈한이다. 피도 눈물도 없다. 과거의 기록과 통계적 확률을 조합해 가장 그럴듯한 ‘진실의 근사치’를 계산해낼 뿐이다. 반면 인간 기자는 다르다. 현장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숨소리를 듣고, 차가운 수치 너머에 숨겨진 구조적 불의에 분노한다.
AI가 던지는 경고는 명확하다. 편리함에 파묻혀 통계를 지식으로 착각할 때, 언론은 진실을 기만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AI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로 나열한다. 기계가 쓴 기사에는 맥락과 역사의식이 없으며, 교정할 수 없는 편향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 차가운 알고리즘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될 뿐이다.
요즘 언론계에는 ‘AI 저널리즘’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AI에게 기사를 맡기는 ‘기자 업무의 외주화’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데이터 요약이나 오디오 녹취 같은 업무는 AI에게 과감히 맡겨도 된다. 취재의 효율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다르다. 보도가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뇌하고 오보에 책임지는 핵심 역할은 결코 외주화할 수 없다. 기계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윤리적 판단이라는 마지노선은 오직 인간 기자의 몫이다.
인간 기자가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 편리한 책상을 박차고 나가 사건의 진실이 숨 쉬는 ‘현장’을 지키는 것이다. 또 AI가 도출한 결과물을 반드시 교차 검증하는 통제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올해 ‘제60차 홍보 주일’ 담화에서 ‘인간의 목소리와 얼굴 지키기’를 강력히 권고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관계의 자리라고 역설했다.
정보 전달과 소통의 도구가 아무리 정교해도 언론은 끝까지 본연의 가치인 ‘따뜻한 연대’와 ‘진실에 대한 공감’을 지켜야 한다. 진실은 차가운 기계 회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인간 기자의 뜨거운 가슴에서 잉태되고, 치열하게 고뇌하는 이성적인 머리로 쓰인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저널리즘의 사명은 오직 온기를 지닌 인간만이 완성할 수 있는 거룩한 소명이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 우리에게는 아파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뜨거운 가슴이 있다. 진실은 알고리즘의 계산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하는 인간의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 차가운 기술에 영혼마저 맡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