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사도들을 부르심, 1482년경, 프레스코, 349x570cm,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9 ~1494)는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의 초상화를 철저한 사실 기법으로 실물 그대로 그렸다. 자신의 그림에 금박을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화가로, 이탈리아 전역
에서 당대 최고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1481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코시모 로셀리, 루카 시뇨렐리 등과 함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요청에 따라 시스티나 성당 측벽에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다.
기를란다요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거장들은 예수님의 생애 7개와 모세의 생애 7개의 주제로 프레스코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의 목표는 구약에서 예고되고 신약에서 계시되어 성 베드로의 계승자들에 의해 영존하게 된 그리스도의 교회
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림의 구성은 식스투스 4세 교황이 직접 구상했는데, 예수님의 생애에 상응하는 모세의 생애를 구세사로 정리했다.
기를란다요가 그린 예수님의 생애 네 번째 주제인 ‘사도들을 부르심’은 코시모로셀리가 그린 모세의 생애 네 번째 주제인 ‘갈대 바다를 건너는 모세’와 짝을 이룬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부르시어 구원하는
장면과 모세가 갈대 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장면을 대조시킨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히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과 순서를 따르고 있는데,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언을 완성했으며 새로운 모세라
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18-22 참조)
기를란다요는 갈릴래아 호수의 풍경과 함께 예수님께서 물 안에 있는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광경을 묘사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어 모세의 이름처럼 그들을 물에서 건져내신다. 왼쪽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시자 그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이고, 오른쪽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동행하여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자, 그들이 아버지를 배에 두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장면이다.
또 전경에는 당시 피렌체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고 말씀하시자,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색 망토를 두른 베드로는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색 망토를 입은 안드레아는 두 손을 합장하는데, 그들은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베드로는 수난을 암시하는 맨발로 있다.
이것은 기를란다요가 몸담았던 피렌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께 순종하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전면 오른쪽에 피렌체 출신으로 로마에서 명성을 떨치던 사람들을 등장시켰는데, 그들 중에는 로마 주재 피렌체 은행의 지점장으로서 후에 식스투스 4세 교황의 재무 담당이 된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를 비롯하여, 그 앞에 세련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그의 아들 로렌조도 있다. 그는 후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바티칸 은행의 관리 책임자가 된다. 다른 주위 사람들은 당시 피렌체 공국에서 애덕 실천과 탁월한 교양을 지녔던 토르나부오니 가문의 친척들이다. 소년 로렌조 뒤에 짧고 흰 수염의 인물은 동방 교회의 인문주의 학자로 있다가 피렌체로 망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가 요한 아르기로포울로스(John Argyropoulos)이다. 기를란다요가 이런 인물들을 예수님의 제자 그룹에 포함한 것은 대단히 파격적이며 예언적 표현이다. 이들은 피렌체의 영광을 예찬하기 때문이다. 왼쪽에 푸른 옷을 입고 등을 돌리고 있는 여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당시 피렌체에 살고 있던 일반 시민들을 상징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이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다.
우리가 교회의 뜻을 따르는 것은 다만 교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리스도를 위하는 행위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네 어부를 통해 우리가 교회의 권위에 얼마나 순종하는가를 깊이 묵상하게 한다.
기를란다요는 당시 시작되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밝아지면서 청아한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의 새들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실천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개하고 있다.
글 _ 손용환 신부 (요셉, 원주교구 북평본당 주임)
1992년 사제 서품. 원주교구 소속으로 16년간 군 사목을 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북평본당 주임으로 있다. 저서로 「오색의 기도」 「하느님의 가장 좋은 선물」 「사제의 향기」 「맹 신부」 「어리석음의 승리」 「천주교 군종교구사」 등이 있다.